오늘 아침뉴스에 청년고용지원금 5000만원을 제주도에서 잘못 지급했다는 보도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누구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망각하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선거 직 공직자들이 유권자들을 현혹시키는 마법의 지팡이로 ‘공짜’를 자주 사용한다.
역사적 통치이념으로 내려오는 고사다. 한 임금이 포상금을 걸고 전국 지식인들에게 통치를 잘하는 방법을 공모했다. 공모한 결과 모두 백과사전 몇 질정도 분량이어서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했는데 공통적인 답은 “공짜 점심 없다”는 말로 모아졌다는 것이다. 세상에 노력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리라.
그런데 요즘은 중앙정부의 복지정책을 배경으로 지역에서도 주민을 현혹시키는 보조금, 지원금 등 포퓰리즘 공짜정책들이 활기를 띠고 있다.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재원은 주민으로부터 걷어야만 하는 선거직 공무원이 무슨 돈으로 ‘공짜’보조금, 지원금 정책을 한단 말인가. 보조금, 지원금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돈은 반드시 주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혈세다. 내 돈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건네주고 지불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줄줄 새는 돈은 차치하고라도 어차피 돈 임자는 주민이라는 말이다. 남의 돈 갖고 폼 잡고 생색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선거직 공무원들의 포퓰리즘 이다.
사실과는 어폐가 있는 소문이지만, 선거직 공무원은 당선만 되면 취임하는 날부터 지원금 보조금을 가지고 차기 선거 운동을 한다는 말들이 믿거나 말거나 하는 말들이다.
마법의 공짜로 유혹해 당선인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달콤한 것만 떠벌리고, 현실의 아젠다는 교묘하게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
이와 유사한 정책 사례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푸어’ 계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행되고 있는 소득하위 층을 대상으로 주민센터에서 시행하는 거리청소사업이다. 칼라 유니폼 입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분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케인즈의 경제파급효과 뜻도 있지만 공공일자리는 ‘공짜’인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분들이 청소하는 것을 보는 일반 시민들은 세금낭비라는 생각이 우선일 것이다.
정책이 폼 잡고 생색내는 이면(裏面)에서 많은 주민은 피해감과 실망감을 가진다. ‘공짜’라는 마법의 지팡이는 알고 보면 보통 지팡이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공짜는 있다’는 식의 포퓰리즘 버전인 선심 약속은 오늘도 여전히 지방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선거 직 공무원들의 질주를 막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포퓰리즘의 끈질긴 생명력을 없앨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포퓰리즘을 이용하는 선거직 공무원들과 공조직 관료들이 많은 비용을 부담하도록 감독을 철저히 해야한다. 몇 십 배를 부담되도록 대다수 주민들은 인터넷, SNS 등을 통해 반칙하는 것을 사회에 호소하고 알리고 압박해야 한다. 그래서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직설한다면 내 돈을 가지고 네 돈인 척 하며 ‘공짜’로 주는 것들은 모두가 내 것인데 마법의 사기를 치는 것으로 생각하자는 말이다.
그러나 삶에는 진정으로 약자가 점심 값을 낼 때도 있다. 청을 들어주는 사람과 부탁하는 사람, 즉 ‘갑(甲)과 을(乙)관계’ 에서는 약자인 ‘을’이 점심 값을 낸다. 그러나 이 밥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특혜 제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갑과 을’ 간의 점심 대접은 반대급부를 위한 경제적 투자다. 그렇지만 공직자의 ‘공짜’ 포퓰리즘 정책은 주민의 혈세를 도둑질해서 자기가 선심을 쓰는 양 해서 자신의 당선만을 챙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