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찬연한 초하에 보리밭 보리가 황금물결로 익어 가듯 아침 햇살에 타오르는 노을과 함께 물들고 싶다. 옛날 중국 당송시대의 8대 문장가로 꼽혔던 한유라는 사람은 “하늘아래 쫓기어 나오지 않은 명문이 없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길을 걷다가도 떠오르는 이야기를 메모하고, 단 한 줄의 생각이라도 붙잡아 두었다가 쫓기는 시간 속에서라도 작품을 쓰는 이유는 시학이 잠복해 있는 것이 아닐까.
벌써 10여년전 전부터 항상 필자 이름의 언저리에 시인이라는 꼬리표를 얻게 됐다.
막상 등단해 ‘시인’이라 불리어 졌을 때 흡족함보다는 내가 어느 작가를 불러야하는 호칭처럼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시인은 하늘에서 내려준 이름이라 알고 있다. 수필이나 소설과는 달리 시를 쓴다는 것은 노력해서 되는 희망사항이 아니라는 것과 어느 정도 끼와 기재를 타고나야 된다.
필자는 고교때는 시를 써 보겠다고 참고서 표지 뒷면에 나만의 글을 쓰고 다니면 옆친구가 이것도 시 냐고 비아냥 거리기 일쑤였다. 시인의 되겠다는 꿈은 없었지만, 불혹의 나이에 신춘 문예지에 응모해 당선된 적은 없었지만, 우연찮게 끈기로 달라 붙어 월간 좋은 문학로 신인상에 당선됐다.
필자는 시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날부터 내 안에 나를 발견해 어깨동무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른 봄 언 땅을 뚫고 솟아나는 여린 연초록 고사리를 보며 자연의 신비 앞에 발을 멈추기도 하고, 가끔 늦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빛나는 달과 별을 향수와 함께 가슴에 품기도 하는 내안의 내가 분명 살아 꿈틀거리며 요동치고 있음을 알았다.
내 안에 내가 얼마나 순수하고 자유하며 생기가 오롯한 지를. 글을 쓰며 깨달은 것이다. 내가 아는 하찮은 지식의 지면으로 한 세상을 들여다보는 어리석음이거나, 유유자적 시간을 즐길 권리가 있음을 새롭게 알아가는 것이었다.
퇴계의 좌우명인 ‘신기독(愼其獨)’ 이라는 말은 중용에 나오는 말로 주자는 도를 지키고 따름에 있어 혼자 있을 때라도 더욱 삼간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낯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정신이 바른 듯, 마음이 넓은 듯, 의지가 굳은 듯 행동하지만 혼자 있게 되면 흐트러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그렇듯 세상이 나를 증명해 주는 것은 내가 걸어 온 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진정 내 안의 나를 증명해 줄 수 있도록 크나큰 단서를 제공해 줄 시인이라는 그 이름이야말로 필자에게는 참으로 황홀한 것이다.
한 아이가 잘 되려면 잘 먹이고, 잘 입히고, 교육을 잘 시키기보다는 가족이나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
이미 불우하게 태어나 배고픈 유년기와 고생스런 청년기를 가진 것이 필자에게는 행운이었고 바람처럼 스쳐지나간 그 때 그 사람들이 머무는 이유를 묻기보다 고픈 배를 먼저 생각하는 여유와 배려를 알게 해 준 인연은 진정한 행운이었다.
유년기에 외가에서 자란 필자는 아파서 글을 쓰는 사람, 그 아픔까지도 다시 글로 쓸 수 있어서 자발적인 고난과 함께 다가온 축복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글을 쓰면서 지나치게 멋을 내려 수식하지 않으려 한다.
진솔한 삶을 맛보지도 않고, 느껴보지도 않고 산뜻하게만 채색하려다 본래의 뜻을 저버리고 그릇된 뉘앙스를 풍기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면서 필자에게 주어진 황홀한 그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초롱불로 불밝히듯이 진솔함만을 빈 사기 그릇에 넘치지 않도록 담아 내고 싶다.
최창일-시인/세계자연유산 해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