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 영결식에는 故 변시지 화백의 아내 이학숙 여사와 유족들을 비롯해 장의위원장인 김재봉 서귀포시장, 지역 기관단체장, 문화예술계 인사와 조문객 등 5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장의위원장인 김재봉 서귀포시장은 영결사를 통해 “절대 고독 속에서 개척한 독창적 화풍 속에서 서귀포시와 제주도는 황토 빛의 원형적인 아름다움으로 영원히 빛을 발하게 됐다”며 “명예와 부가 보장된 중앙 화단을 뒤로하고 귀향해 평생을 고향의 이미지를 화폭에 담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바친 사랑과 숭고한 뜻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며 고인이 갈망하던 명품 문화예술의 도시, 서귀포시를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김현숙 제주도립미술관 관장은 추도사에서 “선생님은 항상 엄격한 지도와 끊임없는 애정으로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지 말고 창의성과 고유성 있는 작품을 남기도록 가르쳤다”며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않고 고집스러울 정도로 힘들고 외롭게 걸어가신 그 길이 이제 황토 빛으로, 제주의 그림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고 고인을 기렸다.
김 관장은 이어 “수족처럼 같이하던 지팡이를 내려놓고 사랑했던 서귀포의 그 따스한 햇살 받으며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영면을 기원했다.
한기팔 시인(공동 집행위원장)은 고별사에서 “선생님은 제주에 귀향한 후에도 예술가는 절대 고독해야 한다는 신념아래 ‘폭풍의 화가’라 불릴 만큼 가장 제주다운 향토성 있는 작품들을 남김으로써 ‘가장 제주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몸소 실천하셨다”며 애도했다.
이어 한기팔 시인의 추모시 ‘우성 변시지 화백을 그리며’를 고현심 시인이 낭송하자 일부 조문객들은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유가족부터 차례로 영정 앞에 분향.헌화하고 묵념하는 것으로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고인의 시신은 운구 차량에 옮겨져 영결식장을 떠나 자택과 변시지예술공간, 기당미술관을 거쳐 서귀포시 하원동의 가족묘지에서 파란만장했던 삶을 내려놓고 영면에 들었다.
고인은 1926년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청년기를 보내며 1948년 일본 최고 권위 미술전 ‘광풍회전’에서 최고상을 받아 유명화가 반열에 올랐다.
1957년 귀국한 고인은 서라벌예대 교수를 거쳐 1975년부터 제주대 교수로 근무하며 고향에서 작품활동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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