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연가-공옥자
장미 연가-공옥자
  • 제주매일
  • 승인 201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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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의 절정이라 상찬 되는 오뉴월은 꽃들이 만발하여 황홀하다.
친구의 집을 찾느라 골목길을 천천히 걷고 있는 데, 길가 돌담 곁에 기대어 피어 있는 장미꽃을 보았다. 그 고운 모습에 이끌려 걸음을 멈추고 꽃 가까이 서서 깊이 숨을 쉰다. 세상이 잠시 사라지는 듯하다. 한 모금의 장미향을 마셨을 뿐인데 천상의 한 순간에 서 있었다. 연한 빛의 노란 장미, 방금 봉우리가 열린 꽃잎에선 향기가 강렬했다.
19세기 에머슨은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필적(Beauty is God's hand writing.)이라고 했다.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하나님의 필적이라면 그 맨 앞줄은 꽃 일 것이다. 꽃을 만나면 아직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신 신의 사랑을 느낀다.
꽃이 식물의 생식기라는 사실은 어쩐지 낯설다. 식물의 생식기를 저토록 화사하게 만드신 하나님은 어째서 사람의 그것은 냄새 진동하는 배변기능 곁에 두셨을까.
 꽃이 비록 식물의 생식기인들 이토록 어여쁘니 어쩌자는 말인가.
 식물의 입이라 할 수 있는 뿌리는 땅 속 깊이 숨겨있다, 인간의 입은 얼굴에 있고 식물과 동물은 입과 성기의 위치가 서로 바뀌었다. 식물은 먹는 일조차 땅속에서 은밀하다. 그들에겐 배설이라는 더러움이 없다. 나무 곁에서 평화와 휴식을 느끼는 것은 식물의 청정함 때문이 아닌가. 물과 공기와 흙을 정화하는 식물은 동물들의 안식처이다. 꽃으로 피어 활기와 기쁨을 주고 열매와 줄기와 잎과 뿌리로 동물에게 양식과 쉼을 준다.
눈으로 아름다움을 탐하고 입에 맛있는 음식을 원하고 귀에 고운 소리를 즐기고 향기로운 냄새를 기뻐하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혐오스럽다. 입으로 쉴 새 없이 탁한 기운을 토하고 대소변에서는 악취가, 땀과 때, 눈곱이며 콧물 가래, 손톱 발톱, 어느 것 하나 아름답거나 향기롭지 않다. 씻고 또 씻어 내며 그나마 누추함을 가린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니 당치 않은 오만이다. 오히려 자연을 상처 내고 해롭게 할 뿐이다. 사람도 식물처럼 무사기(無邪 氣) 할 때만, 어여쁜 자태를 보인다. 아가들이 꽃보다 아름답고 현자들의 삶이 고귀한 까닭이다.

꽃은 아무리 사랑해도 탈이 없는데 인간의 성은 아니다. 프랑스의 조르주 바타유는 성애(性 愛)를 ‘짧은 죽음’이라고 말했다. 쾌락의 절정이 죽음과 같음을 빗댄 말일 터지만 그 집착은 긴 죽음도 부른다. 성은 축복이기도 재앙이기도 하다. 인간의 애욕은 절제와 인내를 통해서만 간신히 품위를 지켜 간다. 도(道)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이 입과 성의 관리를 먼저 챙기려는 까닭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지상에 세워진 거대한 도시, 위용을 자랑하는 빌딩들을 바라 볼 때, 그 지하에 넘쳐나는 오물과 하수가 떠오르고, 문명은 회칠한 무덤인 듯싶다.

장미 앞에서 동물인 내가 슬프다. 꽃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 곁에 피어날 순 없을까.

한 순간 내 영혼을 고양시켜준 장미에게 아픈 마음 보내며 발길을 돌린다. 석가의 미소를 연꽃과 같다 하고, 솔로몬의 영광도 백합 한 송이만 못하다 했던 이유를 오래 오래 생각했다.

공 옥 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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