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내에는 국가-도지정 문화재가 모두 373건이나 된다. 다른 지방에 비해 역사적 유물-유적들은 적지만 그 이외의 귀중한 문화재들은 꽤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화재들을 보존-관리하려는 정책이나 의지, 인력 등은 크게 모자라다. 아니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단적인 예가 세계적 건축 명장(名匠)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작품 ‘카사델 아구아’의 파괴다. 다른 사람이 아닌 행정 당국자가 저지른 일이다. 비난이 거세자 장소를 옮겨 재건축한다던 제주도의 약속도 지금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제주도에 문화재를 보존-보호하려는 정책이나 의지가 있다면 세계적 명장의 건축 작품을 이렇듯 무참히 짓밟을 수가 없다.
최근에 일어난 관음사 보호수의 수난이나 섭지코지 지하동굴의 파괴도 문화재에 대한 영혼을 잃어버린 잘못된 제주도 당국의 문화관(文化觀)에 기초한 것일 수도 있다.
제주도가 제대로 문화재 보호정책을 쓰고 의지가 확고하며 필요한 인력 확보에 노력했다면 도내에서 가장 유명 사찰로 꼽히는 관음사 경내에서 문화재인 왕벗 나무가 농약 투입으로 고사되고, 공사장에서 새로 발견된 용암 동굴이 파괴 되는 일을 사전에 예방할 수가 있었을 터이다.
일이 터지고 나서도 수사 의뢰 등 뒤처리를 미적거리는 것은 문화재 행정의 부재에 다름 아니다.
‘카사델 아구아’의 예에서 보듯 행정당국은 중기를 동원해서 세계적 건축물을 박살내고, 관음사 왕벗과 제주대학교 입구 수 백년 노송의 예에서 보듯 몰염치한 범인은 극독 물로 보호수를 고사시키며, 섭지코지 예에서 보듯 새로 발견된 용암동굴은 개발업자에게 파괴 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범인들을 탓하기 전에 제주도 당국은 잃어버린 문화재에 대한 영혼부터 되살려 놓아야 한다. 행정 당국은 거장(巨匠)의 건축물을 부수고, 개발사업자는 동굴을 훼손 하고, 다른 한 쪽은 보호수를 고사케 했으니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잘못한 것인지 헷갈린다. 정책도, 의지도, 인력도 부족한 이런 상황에서는 또 다른 문화재 훼손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도내 373개소의 문화재를 관리하는 공무원이 단 4명이라니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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