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자녀교육-김찬집
빗나간 자녀교육-김찬집
  • 제주매일
  • 승인 2013.06.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며칠 전 일이다. 어느 은행 현금지급기가 있는 룸으로 들어서는데, 어린아이를 동반한 젊은 주부가 먼저 문을 밀고 들어가서는 문을 그대로 놓아버린 탓에 닫혀 지는 유리문에 하마터면 내 이마가 다칠 번했다.
또 룸에 들어가서는 그 아이는 현금지급기 부스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흔들면서 장난을 치기에  못하도록 했는데 그 부인은 왜 아이 기를 죽이느냐는 조금 쓴 소리를 들었다. 그런대 룸을 나갈 때는 더 황당했다. 바로 뒤에 그 젊은 엄마와 어린아이가 따라 나오기에 출입문을 잡고 기다려 주었더니, 그 모녀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 않은 채 몸만 살짝 비틀어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문밖으로 휑하니 나가버렸다.
얼떨결에 문지기가 된 나는 주제넘은 걱정으로  잠간이나마 우울해 졌다.  저 아이는  엄마의 치마폭에서 무얼 배우고 건강한 사회일원의 될 수 있을까 하는 주제넘은 상념이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숱한 인연들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상대적 존재다.
절대자는 신밖에 없다. 아니, 신도 피조물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 하물며 사람은 단독 자가 절대 아니다. 신과 자연과 사회와 이웃 …그 모든 타자(他者)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명의 호흡을 이어 간다.
제 가족만 알고 제 피붙이만 아끼는 폐쇄적 사랑은 확장된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왕국을 다스리는 것보다 가정을 다스리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이 말은 르네상스시대를 이끈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의 탄식이다. 우리 주변의 곳곳에서 가정이 해체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과 자살률은 OECD국가 중 단연 1위다. 자살률은 평균치보다 3배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정의 붕괴는 반드시 높은 이혼율과 자살률 때문만은 아니라 자녀교육이 문제라는 것이다.
요즘 한 아이만 낳고 편애하는 젊은 주부들은 자동차 뒤창에 “공주(왕자)가 타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붙이고 운전하는 것을 자주 본다.  공주나 왕자로 키운 자녀는 마마보이, 공처가, 참을성 없는 ‘독불장군’코스로 인생길을 간다.어려서는 엄마 치마폭에 파묻혀 나약하게 자라고 결혼해서는 점점타협을 못하고 왕따로 지내다 나이 들면 버릇없는 자식에게 치여 쓸쓸한 세월을 보내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쓸쓸하고 외롭게 지내는 노인들 중에는 남자들이 태반이고 여자는 극소수란다. 젊어서는 아내에게 경제권, 가정 교육권 모두 빼앗겨서 살아온 인생여정의 결과다요즘도 실전과 이론에서 무장을 강화해나가는 여성에 비해 오히려 대책 없이 전업남편(house husband)들이 가련한 가장들이다. 어려서는 엄마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아내를 따르고, 나이 들어서는 데릴사위를 얻거나 시집간 딸을 따르는 새로운 풍속(新三從之道)이 생기고 있다.`남녀평등시대'를 지나 `여성 상위시대'로 가는 마당에 빗나간 자녀교육으로 이제는 `위기의 여자' 아닌 `위기의 남자'가 더 큰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또 직장을 가진 주부에게 현모양처의 역할을 요구하면 바보다. 슈퍼우먼 콤플렉스는 남편을 사회적으로 남보다 더 출세하고 가정에서는 가사를 더 많이 분담시키기 위한 강박관념이다.
젠더 갭(gender gap)은 빗나간 자녀교육이 원초다. 자식들은 부모를 경원(敬遠)한다. 아니 경멸한다. 자식들의 신뢰를 잃은 가장의 권위란 아무 쓸모없는 구닥다리 장식에 불과하다. 경제적으로는 물론 윤리적으로도 풀이 죽을 대로 죽은 가장(家長)들은 책임의 무게에 짓눌린 채 소외의 그늘 밑을 한숨으로 외롭게 서성이고 있다.
자녀에게 ‘사랑과 믿음의 바탕’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가정, 그 가정 안의 어버이만큼 서글픈 자리가 또 있을까, 자녀의 인성에 관한 한 어머니의 숨결은 자식들의 삶속에 정신적 유산으로 깊숙이 자리 잡는다. “가정은 나의 대지, 나는 거기서 정신적 영양을 섭취 한다”는 펄벅의 소설 ‘대지’ 마지막 구절을 생각해 본다.

 

        김  찬  집 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