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 4년차인 박준혁은 지난 2010년 경남 FC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최고의 골키퍼 김병지의 아성에 가려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이듬해 대구 FC로 이적한 박준혁은 주전 자리를 꿰찼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 대구에서 2시즌 동안 62경기에 출전, 85골을 내줬다.
K리그 클래식 골키퍼 중 가장 작은 키(180cm)를 가진 그에 대한 시선은 느낌표보다 물음표에 가까웠다. 하지만 박준혁은 '숨은 보석'이었다.
당시 공격 축구를 표방했던 대구에서 유일하게 빛났던 수비자원이었다. 대학시절 풋살 국가대표 골키퍼로 활약하며 순발력과 기본기를 익혔다. 단신이라는 체력적인 약점을 상쇄시킨 것이다.
제주는 주전 골키퍼 김호준의 군 입대(상무)와 간판 수비수 홍정호의 부상으로 지난 시즌 상위리그에서 경남(60실점) 다음으로 많은 골(56실점)을 내주며 수비 불안에 시달렸다. 박경훈 감독이 박준혁을 선택한 이유다.
올 시즌 제주로 둥지를 옮긴 박준혁은 박경훈 감독의 기대에 100% 부응하고 있다.
시즌 개막전에서 대선배 김병지(전남)와의 맞대결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지난날의 설움을 날린 박준혁은 올 시즌 11경기에 출전, 단 8실점만 내주며 제주의 리그 최소 실점을 이끌고 있다. 경기당 실점율은 0.73. 단 1패도 없이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포항의 신화용(9경기 6실점, 경기당 실점율 0.67)에 이어 최저 실점 2위의 기록이다.
팀 공헌도의 척도가 되는 주간 베스트 11에서도 권정혁(인천), 전상욱(성남)과 함께 골키퍼 부분 최다 선정(2회)을 기록하고 있어 그의 주가는 나날이 치솟고 있다.
박준혁의 진가는 지난 12일 인천과의 K리그 11라운드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이날 인천은 무려 13개의 유효슈팅을 때리며 제주의 골문을 노크했지만 박준혁의 눈부신 선방에 단 한 골도 성공시키지 못하면서 0-0으로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이날 그의 눈부신 활약에 제주는 수원을 끌어내리고 리그 단독 2위로 뛰어올랐다.
박경훈 감독은 “박준혁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대량실점을 했을 것”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박준혁은 이날 ‘맨오브더매치(MOM·경기최우수선수)’에 선정됐다.
이 같은 활약에 조만간 박준혁이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근 김영광(울산)이 지난 3월 오른쪽 종아리 근육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카타르전에서 활약했던 김용대는 최근 컨디션 난조로 부진한 모습(9경기 14실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성룡(수원)의 뒤를 받치는 대안 없는 상황에서 K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그가 최강희호에 승선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박준혁이 남은 경기(수원(18일), 서울(25일)에서 지금과 같은 활약을 펼칠 경우 다음달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혹은 7월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올 시즌 목표는 0점대 방어율”이라고 밝힌 박준혁은 “축구에서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수비의 마지막 보루”라며 “내가 무너지면 팀도 무너지기 때문에 기복 없는 활약을 계속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