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는 하위 단계에서 상위 단계를 향해 피라미드 형태의 계층적 배열로 5단계로 되어 있어서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그 다음 단계의 욕구가 발생한다고 하였다.
1,2단계는 ‘생리적 욕구’와 ‘안전에 대한 욕구’로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 기본적 욕구이다. 그 다음을 넘어선 3단계는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인데 가까운 사람들과 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애정적 관계를 형성하고, 또 집단에 소속해서 인간 관계를 형성하여 소속감을 느끼며, 자신의 위치를 집단 속에서 확보하려는 욕구로 우리 주변 보통사람들의 삶의 전형적 모습이다. 4,5단계는 ‘자기존중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로 인정과 존경을 받고 명예를 추구하거나,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하여,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하려는 최고 수준의 욕구이다.
인간이라면 누군들 5단계의 정상에 오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겠는가 마는, 그러나 사람들의 삶이 천차만별이라 한평생을 살며 욕구5단계 피라미드의 어느 층에서 머물다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부득부득 기를 쓰거나 또는 최선의 노력으로 5단계의 정상에 오른 자도 있겠지만 도중에 굴러 떨어지거나 포기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랴.
얼마 전에, 40년 전 한국 영화 ‘팔도강산’에서 방방곡곡을 돌며 아들딸들의 시린 가슴을 따뜻한 품안에 감쌌던 ‘영원한 우리의 어머니’인 팔순의 여배우 황정순씨가 TV에 나왔다. 그는 서울뮤지컬컴퍼니가 이번에 뮤지컬로 되살린 ‘팔도강산’ 공연에 특별 출연한다는 것이다.
아나운서가 묻는다. “ 꼭 여쭤보고 싶었는데, 인생이 뭐예요?” 그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 가족사랑, 이웃사랑이지요.”
간단 명료하다. 책가방 끈이 짧아서도 아니다. 연기 인생 60년 동안 수많은 영화 속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고 창조하면서 터득한 명쾌한 답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애정적 관계를 형성하고, 또 집단에 소속해서 인간 관계를 형성하여 소속감을 느끼는 3단계욕구에 해당되는 우리 주변 보통사람들의 삶의 전형적 모습이며 이게 바로 황정순씨의 인생관이었다.
이웃사랑 없이 애국 애족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허망한 구두선이 심상해져버린 요즘에,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영화 영상을 통해 잔잔한 감동으로 표현해 수천만의 관객을 울렸던 황정순씨의 말이기에 나에게는 절절하게 와 닿았다.
매슬로의 욕구의 5단계는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유소년기가 1단계라면 청년기는 2단계다. 성년기에 이르러 3단계를 이루고, 그 다음 장·노년기에 4·5단계로 나아가야 되는데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아 보인다. 성급하게도 한꺼번에 뛰어 오르다 미끌어지고, 구르고, 다치고 그러다 끝내 오른들 상처뿐인 영광에 다름 아니다.
황정순씨의 평범한 인생관이 고요한 호수면에 동심원을 그리며 잔잔히 확산되는 파문처럼 집안을 넘고 이웃과 마을을 건너 도시로, 전국으로 퍼졌으면 좋겠다. 바람을 타서 도미노 현상처럼 전국이 가족사랑, 이웃사랑으로 번져갔으면 좋겠다. 이번 설맞이 뮤지컬 공연에서는 더욱 원숙한 연기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든 한국인들의 가슴을 다시 한 번 찡한 가족사랑, 이웃사랑으로 출렁거리게 했을 것이다.
부 태 림 <성산중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