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전해온다. 정보의 바다가 세상에 넘치는 ‘지구의 집’시대에는 전설속으로 사라져 버린 한마디의 속담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혹한을 거쳐 오늘을 사시는 우리들의 조부님과 조모님들은 정말 낫 놓고도 기역자도 모르는 세대이시다. 나라를 잃어 버렸기에 한글을 배울 기회를 빼았겼고, 학교를 다닐 수 없는 대물림의 가난 때문에 책과는 담을 쌓아야 했다. 그나마 동네서당을 다닌 분들은 그래도 일뤠강아지만큼은 글 눈이 떳고, 야학에서 ‘가나다라....’를 배운 사람들은 한글 문서는 깨칠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할아버님 할머님들께서는 다섯 손가락을 주판으로 삼고 손가락 마디를 주판알로 굴리면서 가난을 헤쳐 오셨다.
일제강점기 압박과 설음에서 해방된 민족이 되면서 정부차원의 문맹퇴치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제주도만 해도 문맹의 설음을 겪은 마을 주민들이 학교부지를 내놓으면서 국민학교를 세웠고, 면 소재지에는 중학교를 건립했다. 50년대와 60년대 초까지는 ‘사진회비’를 내지 못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으나 동네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민학교 의무교육이 이루어지면서 학생들이 공부할 기회는 점점 넓어졌다. 문맹퇴치의 결실이 이루어지고, 이제는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나라가 됐다. 그러니까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은 오늘을 사는 세대들의 머리속에서 칠판의 분필글씨처럼 지워져 버린지 오래다.
바야흐로 인터넷과 핸드폰이 세상이 열렸다. 인터넷 편지와 문자 메시지가 서로의 소통수단이 되면서 글은 또 한번 혼돈의 시대를 껶고 있다. 축약된 글자들이 난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무슨 뜻인지 모르는 신조어들이 탄생하게 된다. 신문 잡지에까지도 ‘글 읽어도 무슨 말 뜻인지 왁왁한 세상’이 되가고 있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2004년도 신어 보고서’에 수록된 신조어는 626개라고 한다. 정말로 무슨 뜻이지 현대판 문맹자임이 실감난다. 신조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몇 개를 보자. ‘택숙자’는, 택시에서 잠자며 손님을 기다리는 운전기사다, 우리사회에 짙게 드리운 불황의 그림자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는 사람은 ‘다운시프트족’. ‘낙바생’은,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듯 대졸 예정자이면서 직장을 구한 대학생을 말한다. ‘삼일절’은, 31세면 절망이란 뜻이고, 청년백수 전성시대를 빗댄 말은, 이른바 ‘청백전’이다.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대변하는 ‘김치우드’. 남을 비방하는 댓글을 올리는 사람은 ‘악플러’이다. 웰빙의 한글식 표현은 ‘참살이’라고 한다.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사라져가는 말도 많지만 새로 등장하는 축약어들은 우리들의 문자생활을 혼돈의 늪속으로 빠트리고 있다. 얼마나 많은 신조어들이 탄생하여 현대판 문맹자들을 양산해 낼지? 가난했던 시절, 서당을 다니던 동네 학동들이 천자문 첫머리인 天地玄黃을 빗대어, 하늘천, 따지, 검은솥에 누릉밥, 선생이랑 한 숟가락, 나랑 한 사발이라고 큰 소리로 읊조리던 것처럼,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읽어야만 하는 처지가 심란하기만 할 뿐이다.
현 춘 식 (시 조 시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