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그 날의 함성을 어찌 잊으랴(문경숙)
4월, 그 날의 함성을 어찌 잊으랴(문경숙)
  • 제주매일
  • 승인 201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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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4.19혁명 제 53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승만 정권이 3.15 부정선거에 촉발되어 마침내 학생을 주력으로 4월 혁명이 발발한다. 독재 정권의 경제파탄, 부정부패, 불법적 집권 연장 음모에 맞선 승리의 민주 혁명이다. 1960년 4.19혁명 전개 과정을 보면 2월 28일 대구 소재 고등학생 수백명이 야당인 민주당 선거 연설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일요일에 등교 지시하자 도청 앞에서 민주주의를 살리자고 외쳤다.
필자는 4월 19일 8시 30분 학우들과 서대문에 위치한 대학교 교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와 광화문 일대에서 타 대학 학생들과 “정·부통령선거 다시 하라!” 등의 플랫카드를 들고 행진하다가 경무대 쪽으로 향하였다. 경찰의 곤봉 세례를 맞아가며 밀리고 밀고 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경찰 지휘관이 돌격하면 땅에 주저앉아 버티면서 “우리 시위는 평화적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효자동 전차 종점 마지막 바리게이트에 이르렀을 때 학생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이 때 경찰이 쏘아댄 최루탄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로 매웠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최루탄 맛을 보는 순간이었다. 다시 스크랩을 짜고 전진을 시작, 제 3 바리게이트 앞에서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던 경찰과 일진일퇴 공방전을 벌이던 차 빈 전차를 방패삼아 바리게이트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하자 이때 밀리던 경찰이 무자비하게 발포하기 시작, 바리게이트 앞에서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호소하던 학생들이 쓰러지고, 필자는 차량에서 떨어지면서 넘어져 무릎과 어깨를 다쳤다.
 계속해서 태평로 일대에서 수십만 군중과 계엄군과 대치하던 중 필자는 4월 26일 오후 1:00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담화 소식을 듣고 학생들과 군중은 “질서를 회복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평화적으로 해산하기 시작하였다. 즉시 학생들 스스로 팀을 구성하고 공공건물에 배치 방화, 파괴를 방지하고 질서 유지키로 뜻을 모았다. 필자도 시위에 참가하였던 학우들과 함께 팀을 구성하여 종로 소방서 앞에 줄을 치고 외부인 출입을 금지시키는 방호 업무를 담당하여 질서 유지와 방화 방지에 적극 참여하였다가 익일 새벽에 귀가했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 날 눈 앞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학우들, 비분강개한 몸짓, 목이 터져라 외쳤던 뜨거웠던 함성, 그토록 절실했던 자유, 그리고 민주화를 외치던 그때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새 백발성성한 노인으로 변해 버렸지만 대학생 신분으로 민주 혁명에 참가하였다는 자부심, 헌법 전문에 3.1운동과 4.19가 두 개의 초석이 되었다는 것도 자긍심을 갖게 한다. 지금 우리에게 민주화란 무엇이고 수년간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도대체 무엇이었나를 다시 한번 성찰의 시간을 갖져본다. 강영석 회장이 헌신적인 노력으로 제주도 출신으로 서울과 각 지역에서 4.19혁명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이 모여 제주 4.19혁명 기념 사업회가 조직되어 모임을 갖고 있다. 4.19혁명 정신인 자유와 민주주의, 정의를 상징하는 기념비라도 제주에 세우고 기념행사가 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수필가 문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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