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행'과 지방작가
'미술은행'과 지방작가
  • 김원민 논설위원
  • 승인 2005.0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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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21세기를 일컬어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문화가 하나의 힘이나 권력으로 작용한다는 뜻일 터이다. “아는 것이 힘”라 하듯이 이제 “문화가 힘”이 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문화예술은 한 나라가 살아가는 생존의 방식일 수 있으며 나라의 부를 창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선진국들이 벌써부터 문화예술을 국가의 중요한 전략상품으로 설정하고 국부창출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 문화예술계, 특히 미술계의 경우 건국 이후 최고의 불황이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미술시장이 침체 일로를 걷고 있으니 만큼 ‘문화의 세기’라는 말도 한낱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듯 하다. 물론 애당초부터 진정한 의미의 미술 작품 유통 거래와는 거리가 멀었던 제주도내 미술계에서는 불·호황을 논할 계제가 아니나 사소한 일도 중앙의 트렌드에 휘둘리는 지방의 입장에서는 영향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문화는 중요한 전략상품

그런 가운데 새해 벽두부터 미술인들에게 ‘살맛 나는’(?) 뉴스가 하나 날아들었다. 정부가 가난한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3월부터 ‘미술은행’을 설립한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미술은행(Art Bank)이란 정부가 미술 작품을 사서 관공서나 병원, 철도역사 등 공공건물에 전시하거나 빌려주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는 1934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된 것으로, 정부지원과 기부금 등으로 운영되는 영국 미술은행은 작품을 사주고 주요기관에서 순회전시도 한다.

 프랑스의 경우 미술은행에 연간 50억 원 이상을 투자, 가장 중요한 미술 작품 수집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독일이나 호주 등도 비슷한 수준의 미술은행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문화관광부의 계획을 보면 올해 25억 원의 예산을 확보, 200∼300점의 신진 작가 작품을 구입하고 앞으로 5년간 매년 30억 원 안팎의 작품을 사들인다는 것.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작품 구입방법을 놓고도 작가를 통한 직접구입(창작 지원)과 화랑을 통한 현장구입(유통 구조 확립) 비율을 싸고 논란이 이는가 하면, 신진 작가 우선이냐 전업 작가까지로 대상을 넓히느냐 하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지방 작가들, 특히 제주지역 작가들에게 얼마나 그 혜택이 돌아갈 것인가에 모아진다.
 정부 방침에는 기회균등을 위해 한 작가의 작품이 2점이 넘으면 안되고, 지역작가도 3분의 1 이상 포함되어야 한다고 돼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전국 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수에 비하면 도내 작가의 세(勢)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위촉토록 돼 있는 ‘작품추천위원회’나 ‘작품구입심사위원회’의 위원 구성 등에서 지역을 배려함은 물론, 특히 제주도와 같이 세가 약하고 작은 지역의 작가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각별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되리라 본다.

작품에 더 많은 애정 쏟아야

지금까지의 미술정책이 대부분 창작 지원에 그쳤다면 미술은행제도는 창작 지원은 물론 미술품의 유통과,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향수(享受)에 이르기까지 입체적 성과를 고려한 제도라는 점에서 보면 정말 문화의 세기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이 제도가 지방작가에게도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게 하려면 정부가 2007년 설립을 구상하고 있는 ‘한국미술진흥재단’ 같은 중앙 집중식 기구 외에 특별히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지역별로 미술은행을 운영하도록 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제주도가 정부와는 별도로 지역에 미술은행 제도를 도입하면 어떨까.
 결론적으로, 미술은행 제도는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미술인들의 안일한 매너리즘 탈피와 함께, 국민들이 미술 작품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을 쏟도록 계도를 해 나가는 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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