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실연의 아픔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은 세월이 흐르면 거의 다 치유된다. 그렇게도 아프던 과거는 어느새 망각의 늪 속에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인연으로 행복에 젖어서 활짝 웃는 날로 삶을 만든다.그런데 이렇게 살다가 문득 과거와 만날 때가 있다. 예전에 생활했던 옛날 사무실이나 유년시절에 가족 또는 지인과 함께 찍었던 흑백 사진이 책갈피 속에서 나오거나 흘러간 연인과 처음 만났던 찻집 앞을 지나게 되면 그 모든 과거가 아름다운 기억으로 되살아나 옛 추억이 실루엣처럼 가슴을 녹인다.지난날의 모든 것이 그렇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먼 과거지사는 슬펐거나 기뻤거나 거의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재생된다. 나는 지금에도 관덕정에 있는 옛날의 제주시청 ‘옛 청사’ 앞길을 지나가노라면, 그곳에서 나의 공무원시작이 떠오른다. 지금은 30년이 훨씬 넘었다. 당시에는 그 앞길이 왕복 1차선이었고 다니는 차들도 시외버스와 시내버스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앞길이 왕복2차선으로 확장되고 너무 달라졌는데 옛 시청 건물은 그대로 남아 있다. 건물은 옛날 그대로지만 건물의 외벽은 오랫동안 쌓인 때가 그대로 남아 있고, 정문은 낙서투성이에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지는 과거는 대개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데 이 자리는 아무도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지 않는 폐품처럼 남아 있다. 여기서 일하고 생활하던 우리들만 당시 제주시 행정의 요람지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이곳 주위에는 고목들이 많다. 수령이 몇 백 년이 훨씬 넘은 ‘폭낭’들이 여러 그루 있다. 이유는 나의 윗세대시절에는 그곳에 제주도청, 지방법원, 지방검찰청, 제주경찰국들이 다 모여 있는 제주도행정의 중심이었고 그 당시에 조경한 나무들이 고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고목들도 매년 춘하추동의 색깔로 세월은 삶의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는 세월의 진리를 조용히 알려주는 자연의 섭리다.
가을에 찬바람에 날리며 땅에 떨어진 낙엽으로. 봄에는 아주 부드러운 연두색 잎으로 태어나서 예쁜 꽃을 피우고, 온 여름내 햇빛을 받고 공기 중의 탄소를 마시며 생명의 섭리를 말해 주고 있다.이 고목들은 옛날과 같이 분주함도 없고 누구 알아주는 자도 없지만, 1년 내내 낙엽을 만들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음세대들을 키우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부드러운 흙이 되면 그 나무가 떨어뜨린 어린 열매들은 다른 열매들과 함께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앞서 가던 세대가 스스로 죽음이 되어 다음세대를 위한 거름이 되는 것은 세월이 만드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세월이 만든다. 어떤 일이 잘되고 어떤 일이 실패했다고 걱정하지 말고 세상만사를 세월에 맡겨야 한다는 어느 문인의 말이 새삼스럽다. 그래서 인간만사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사람의 길흉화복은 예측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리라. 비슷한 의미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다.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됨을 이르는 말이다. 이것을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세월 불변의 법칙’이 된다. 다시 말해 좋은 일은 나쁜 일의 다른 모습이고, 나쁜 일은 좋은 일의 다른 모습이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만 희구하고 나쁜 일은 기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월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세상에는 좋은 일도 없고 나쁜 일도 없다. 파도처럼, 파장처럼 생겨나는 다양한 일들의 양태가 있을 뿐이다. 세월이란 결국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다양하게 경험하는 파도타기 하는 기간인지도 모른다. 현명한 사람은 파도가 아니라 바다, 바다가 아니라 우주가 연대해서 만들어내는 새옹지마와 전화위복의 흐름을 보게는 것도 세월이 흐름이 만드는 인생 드라마다.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는 이치 혹은 섭리에 대하여 우리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믿는 것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