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위령제 현장에서 만난 고영선 할머니의 사연

제65주년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3일 오전 11시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유족과 도민, 각계 인사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봉행됐다.
위령제를 앞두고 4·3사건으로 1만4032명의 희생자 중 1만3903명의 위패가 마을별로 모셔져 있는 위패봉안소에는 유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위패봉안소를 찾은 유족들은 가족의 이름을 찾은 뒤 위패를 손수건으로 연신 닦아냈다. 한 노파는 아버지 위패를 찾고선 이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위패봉안소 제단에는 그날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국화가 가지런히 놓여졌다.
그 시각 행방불명 희생자 위령비에서도 많은 유족들이 참배를 하고 있었다. 행방불명 희생자 위령비는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희생자 4000여 명의 비석이 있는 곳이다.
돌아가신 오라버니의 위령비를 만지고 또 만지던 고영선(77) 할머니는 미리 준비한 음식을 비석 앞에 정성스레 차렸다. 위령비 뒤에는 1948년 제주지역 행불이라는 글귀가 또렷이 보였다.
고 할머니의 오빠 고학수씨는 4·3당시 고작 18살 밖에 되지 않았다. 학생이었던 그는 마을 주민들이 잡혀가서 총살을 당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집 밖을 나갔다 꽃다운 나이에 죽임을 당했다.
고 할머니는 “4·3사건으로 오라버니가 너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며 “오라버니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의 대가 끊어져 버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당시 오라버니는 바다에 빠져 죽임을 당했다”며 “그래도 ‘오라버니의 영혼이 여기(비석)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3사건의 보다 명확한 진실규명과 희생자·유족의 명예회복, 그리고 정당한 배·보상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한편, 이날 위령제에 박근혜 대통령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위령제 참석 대신 조화를 보내 유족들에게 위로의 뜻을 표했다.
박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이 이뤄지지 않자 한 유족은 “올해는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을 기대했는데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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