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에 ‘개미와 매미’이야기가 있다. 여름 동안 땀 흘려 일하는 개미 옆에서 노래만 부르던 매미는 겨울이 오자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개미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 우화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매미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씨 좋은 개미의 도움으로 무사히 겨울을 났다는 것이다.어느 버전이든 이 우화의 메시지는 일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던 매미가 땀 흘려 일한 개미에게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빈다, 즉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매미가 개미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더라도 사람들은 이듬해부터 매미의 노래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해의 굴욕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미와 매미’의 이솝 우화에서 ‘개으름과 부지런함’으로 구분하는 버전보다 노는 것이 일하는 것 보다 더 가치가 있는 삶으로 생각하고 싶다. 왜냐하면 진정한 향연은 진정한 어려움을 아는 자만의 행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고통보다 더 어려움을 아는 자만이 진정한 향연을 펼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원하는 삶’을 추구하는 요즘 에고이스트의 삶은 한겨울의 매서움을 모르는 한 여름 매미들의 향연이 아니라 한 겨울의 고통을 알기 때문에, 짧은 숙명을 섭렵한 위대한 한여름의 향연일수 있다. <나에게 오늘의 행복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챌린저들은 남 눈치를 별반 보지 않는다.
누가 뭐라던 내가 원하는 대로, 피가 들끓는 곳으로 몸 던지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들의 생각핵심은 분명하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짧은 생, 즐겁고 뜨겁게 살고 싶은 것이다. 요컨대, 자시들만의 삶이다!“ 요즘 의지를 불태우며 부지런히 삶을 즐기는 일부 젊은이들이 삶의 풍경이다.
청춘도 양극화다. 한쪽에서는 직장도 없는 백수에, 애인도 없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면서 괴로움과 슬픔으로 사는 젊은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와는 정반대로 삶을 강열하게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물론 이들은 돈이 많다거나 출세, 성공해서 삶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한 여름의 매미 같이 짧은 생, 죽음과 삶은 같은 것이라는 것은 자신들의 생각이고, 이들의 생활 스타일이다. 이처럼 강렬한 삶의 욕구, 자기실현 의지는 결국 죽음에 대한 통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인생 오복으로 인정되는 “잘 죽는 다”는 ‘고종명(考終命)’도 삶을 잘 즐겨야 가능 하다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도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정말 잘 살았다고....... 행복하게 내 맘껏 살았다고 할 수 있으려면 강하고 적극적이고 두려움이 없어야 가능 하다.
애플 CEO 스티브 잡스는 어떤 결정을 할 때 “내일 죽는다 해도 오늘 이 일을 즐길 것인지”를 자신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런 인간의 1분1초는 얼마나 엄정한 순간인가.이들은 스트레스에 강하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직관·기분·의견을 더 중시한다. 누군가 반대 의견을 내면 ‘아, 그런가?’ 하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타당한 지적일 땐 기꺼이 수용한다. 그뿐, 주눅 들거나 스스로를 책망하진 않는다.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어 안달복달하거나, 걱정과 자책감에 휩싸여 의욕을 잃는 일은 더더욱 없다.때때로 이들은 ‘너무 즐긴다.’ ‘무심하다’, ‘자기 일밖에 모른다.’는 뒷담화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러나 이들을 대놓고 타박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실력·열정·자기관리에 있어 이들을 능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떤 적극적이고 친한 친구라 해도 “나와 나의 하는 일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중심주의자가 됐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짓고 싶은 표정만 지었다. 이리저리 부딪히는 일이 생겼지만 그때마다 생각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 하는 것이다.그들은 “전 언제나 제 자신이 우선으로 생각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맘껏 삶을 즐길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에도 상하관계, 조직생활 그런 것이 중요하지만 거기 너무 얽매이면 자신들의 폼이나 스타일을 구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전 파워 싸움에서 한 번도 밀려본 적이 없어요. 이기든지, 아니면 스스로 포기했죠. 타협은 안 해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이라는 것이다.
나는 ‘개미와 매미’의 이솝이화에서 어떤 버전이 가치가 더 있다는 것은 아니다 모두 그런대로 가치가 있다. 양쪽 모두가 삶의 가치라는 말이다.
조선시대 문인이었던 백호 임제(林悌)가 어느 날 말을 타고 외출을 하려던 참이었다. 하인이 대뜸 나서며 "나리께서 취하셨군요. 한쪽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른 한쪽에는 짚신을 신으셨으니."했다. 백호가 꾸짖으며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고 왼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짚신을 신었다 할 것이니 내가 뭘 걱정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내가 보는 한쪽만을 보고 반대편을 보지 못하면서 자신의 식견을 내세우는 것은 참다운 식견이라 할 수 없다고 하염없는 생각을 해본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