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다”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다”
  • 김덕남 대기자
  • 승인 200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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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희망을 줘야 제대로 된 정치

“정부나 정치는 배와 같다”.
예로부터 인용되는 비유다. 공교롭게도 정부나 정치와 관련된 동서양의 비유는 일맥 상통한다.
옛 중국에서는 백성은 배로, 왕이나 군주는 사공으로 곧잘 비유했다.
사공이 삿대를 잘못 저으면 배가 뒤집히거나 엉뚱한 데로 갈 수 있다는 경구일 터이다.
다른 비유도 있다.

당태종(唐太宗) 때 공신이었던 위징(魏徵)은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君舟也 人水也)”라 했다. “물은 배를 띄워 사람을 태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水能載舟 亦能覆舟)”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영어에서 ‘정부(goverment)’라는 말도 중세 라틴어의 ‘배의 키(gubernaculum)’에서 파생됐다고 한다.
국가라는 배의 키를 조종하는 조타수가 바로 정치라는 뜻일 게다.
인용된 비유 모두, 잘못된 정치가 가져오게 될 폐해를 일깨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삶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나라의 길라잡이 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정치를 이름하여 ‘백성에게 감동을 주는 종합예술’이라고 억지로라도 추겨주고 싶은 것이다.
정치가 경제적.사회적.문화적.정치적 약자인 백성들에게 만족과 안정감, 그리고 꿈과 희망을 안겨줘야 된다는 당위는 여기서 출발한다.

어민 생존권 뺏긴 어업협상 분노

여기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정치현실이 백성에게 “감동을 주는 종합예술이 되고 있나 아니냐” 따지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우리는 애써 정치적 장외를 고집하고 구경꾼인양 시늉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그 속에 빠져 이미 정치적(的)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삶의 무게를 가늠하여 정치를 저울 질 하고 생활의 거울을 통해 정치를 만난다.
피부로 느끼는 삶의 질이 바로 정치와 권력을 평가하는 저울추다. 백성들의 정치권력 평가기준은 이처럼 경험적이다.
그렇다면 찬비 추적거리던 을씨년스런 겨울날, 어민과 어민가족 400여명이 정부를 향해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목쉰 함성을 지르며 울분을 토해냈다면 이는 ‘감동 정캄에 대한 환호성일 것인가, 아니면 ‘못된 정캄에 대한 아우성일 것인가.

지난 15일 도내 어민과 어민 가족들은 지난해 절반수준의 ‘2005년도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연승어업 조업조건 재협상 결과’에 항의하고 정부에 피해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선박편으로 상경했다.
일본과의 외교협상도 분명 정치영역이다.
그래서 상경항의 시위까지 불사한 제주어민들의 분노의 함성은 우리 정치역량에 대한 질타가 아니던가.

어민들 피해보상에 최선 다해야

일반적으로 외교 협상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하나의 정답만을 고르는 퀴즈 프로그램 일 수가 없다.
모든 옵션(선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신뢰를 바탕으로 끈질기게 줄다리기를 하며 서로 주고받는 ‘기브 앤 테이크”라 할 수 있다. 외교적 상거래나 다름없다.
이 논리가 긍정된다면 정부는 제주어민과 그 가족의 희생을 담보해서 일본과 EEZ 협상을 타결했다는 것이 된다.

그러하다면 어민들의 생존권을 넘겨주고 일본측으로부터 받은 협상의 결과물은 무엇인가.
해양수산부 측은 “당초 일본이 제시한 규모보다 2배 이상 확보하기 위해 최선 다했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구차스런 변명이나 거짓말보다 돌팔매를 맞더라도 당당하고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정말 ‘당당하고 정직한 정부’의 자세다.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제주어민들의 생존권을 담보하고 협상했다면 이를 떳떳하게 밝히고 어민들의 이해를 구해야 순서다.

그런 연후에 근해어선 특별 감척사업 지원과 갈치할당량 축소에 따른 피해보상 등 최소한의 어민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도리다.
국가라는 배를 조타(操舵)하는 것이 정치라지만 당나라 때 관리 위징의 말처럼 “백성들은 배를 전복 시킬 수 있는 힘도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좀더 솔직하고 겸손해야 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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