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6년 12월 청나라 태종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널 때까지만 해도 이순신의 수군이 맹위를 떨쳤던 조선이란 나라를 쉽게 정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청나라 군사들이 압록강을 건너 한양에 이른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임진년 바다를 호령하던 조선 수군의 위력은 온데간데없었고, 국방에 소홀했던 조정은 주화파와 척화파로 나뉘어 연일 설전을 반복하다 결국 청나라 황제 앞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된다.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비쳐진 조선이란 나라는 힘없고 굶주린 백성을 전장으로 내몬 후, 성리학의 울타리 속에서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배부른 논쟁을 일삼던 나약한 사대부들의 천국일 뿐이었다.
백성을 지켜 줄 힘이 없는 나라! 그 나라에 태어난 죄로 무수한 생명이 희생되거나 이역만리 타국에서 노예로 살아가야 했다.
37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유엔 사무총장과 안보리 의장을 배출하고 과학위성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리는 등 외교력과 국방력 그리고 경제력 등에서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위상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도 주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은 예와 다를 바 없다.
그동안 수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켜온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 중 하나는 ‘대를 이어 나라를 지켜 낸 병역명문가’와 같은 국민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병역명문가란 3대(代) 가족 남자 모두가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가문을 말한다. 즉 할아버지를 1대로 하여 2대인 아버지와 그 형제, 그리고 3대인 본인 형제와 사촌형제까지 모두가 현역으로 군복무를 성실히 마친 가문이다.
병역명문가는 병무청에서 매년 실시하는 ‘병역명문가 찾기’ 선양사업을 통해 선정되며 올해로 10회째를 맞는다.
이 사업은 3월15일까지 신청을 받은 후 ‘올해의 병역명문가’로 선정된 가문에게 인증서와 패를 수여하고, 병무청 홈페이지 명예의 전당에 가문 이력을 영구 게시함으로써 병역이행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총 1,363가문이 병역명문가로 선정되었으며, 이중 제주 출신은 53가문에 이른다. 이는 인구 대비로 볼 때 결코 작은 수가 아니다.
특히, 2011년에는 서귀포시 성산읍의 강건배 가문이 대한민국 최고의 병역명문가로 선정되어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10년에는 아라동의 문병회 가문이 국무총리 표창을 받아 제주인의 명예를 드높인 적이 있었다.
올해도 도민들의 많은 관심 속에 제주 출신 병역명문가문이 다수 탄생하여 제주인의 나라사랑 정신과 병역이행 자긍심을 전국에 널리 알릴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신현삼 제주지방병무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