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그만하고 공부나 해라’...차가운 시선 견디기 어려워
‘운동 그만하고 공부나 해라’...차가운 시선 견디기 어려워
  • 박민호 기자
  • 승인 2013.0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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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육성 안돼...실업팀은 ‘최고’ 학생팀은 ‘최저’ 악순환 반복

<제주체육현장을 가다.4>
또래 보다 일찍 진로를 결정한 아이들
“‘라면소녀’ 임춘애 떠올리며 육상 그만두라고 한다”

“아직도 어린 여자아이들이 장거리 육상을 한다고 하면 ‘라면소녀’ 임춘애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주위 형제들까지...” 중학생 딸을 응원하기 위해 훈련현장을 찾은 강성필(46)씨는 장거리 육상 선수들을 바라보는 이 같은 시선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학부모들 역시 이 같은 주위의 시선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거 해서 밥이나 먹겠어’, ‘여자아이 힘든 운동 그만 시키고 공부해라’ 등 여전히 육상에 대한 시선은 냉소적이다.

지난 1986년아시안게임 당시 해성처럼 등장, 육상 트랙 800m, 1500m, 3000m에서 3관왕에 오른 임춘애(44당시 17세)는 한국 여자장거리 육상의 간판이다.

하지만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라면만 먹고 운동했어요”라는 기사로 이른바 ‘라면소녀’로 불리며 ‘헝그리 정신’의 대명사로 국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후 임춘애는 당시 체력보강을 위해 ‘도가니탕’은 물론 ‘뱀탕’까지 먹었다며 해명에 나섰지만 아직도 국민들은 그녀를 ‘라면소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중학부 육상 유망주 박민호(제주중3) 역시 주위 시선이 따갑기만 하다.

박민호는  “저는 육상이 좋아요, 훈련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그건 견뎌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민호를 힘들게 하는 건 매일 시작되는 새벽 훈련도 오후 체력 훈련도 아닌 주위의 시선이다.

“지난 명절에도 지인들은 ‘힘든 운동 그만두고 공부나 해라’고 말해요, 전 그저 내 꿈을 향해 가고 있는데....”

또래 보다 일찍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 민호의 꿈을 가로 막는 건 장거리 육상을 바라보는 주의의 그릇된 시선이 선수들의 꿈을 방해하고 있었다.

선수들의 꿈을 막는 다른 하나는 연계육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 진로를 결정 열심히 운동을 시작한 중학교 선수들은 남녕고(체육과)나 일반고로 진학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는 운동부자체가 없기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체육과가 있는 남녕고의 경우 매년 5명의 신입생 선발하지만  여기에는 단거리와 투척, 장거리 등 육상 전 종목 선수들을 포함한 수치기 때문에 장거리 선수 대부분은 일반 학교로 가거나 타 지역으로의 진학을 고민해야 한다.

결국 체육 중·고등학교가 대안이지만 아직 제주체육 중·고 설립문제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제주에는 1개 대학팀(여자)과 2개의 실업육상팀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타 지역에서 고액 연봉을 주고 데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이 이들 팀은 전국 상위권 수준에 이름으로 올리고 있다.

결국 지역 실업팀은 전국 최고 수준이지만 선수 수급도 어려운 중·고팀은 전국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이 매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제주도에서 활동 중인 초중고 육상 장거리 선수는 고작 60여명.

육상계에선 지역팀들이 지역 출신 선수 ‘쿼터제’ 등을 만들어 지역 선수들을 채용해 준다면 어린 선수들이 보다 현실적인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선수 확보와 함께 극심한 지도자 부족현상도 겪고 있다.

체계적인 선수 육성을 위해선 초중고대학부 모두 전문 코치가 있어야 하지만 제주에선 한명의 지도자가 대학부터 초등부까지 지도하고 있다.

체육과가 있는 남녕고의 경우에도 한명의 코치가 단거리와 장거리 선수들을 함께 지도하고 있다.

전문 지도자가 활동 중인 여대부(제주대) 단거리 종목의 경우 전국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선수들의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것까지가 지도자의 몫”이라고 말하는 제주도체육회 소속 중등부 양순규 코치는 “아이들이 바라는 건 무한한 관심이 아니다. 어린 선수들이 희망을 갖고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여건(길)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가 내리면 선수들은 오일장 어두운 천막 안에서 달리기를 한다. 그래도 꿈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선수들이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을 딛고 제주체육의 미래로 성장하기 위해선 지금 이 순간 이들에 편견을 없애고 보다 행정당국의 세심한 관심이 절실해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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