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교회는 지금 사순절을 지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새기면서 참회와 기도로써 부활을 기다리는 영적 준비 기간이다. 마음을 열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회개와 함께 용서를 구한다. 또 사랑과 희생으로 부활의 신비, 그 기쁨과 희망을 갈구하게 된다. 그리스도교 신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같은 사순절의 참의미를 새겨볼만 하지 않은가 여겨진다. 사회 일원으로서 내 직분은 무엇이고, 맡겨진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노인 존중 사상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발표한 사순절 담화문을 며칠전에 접하고 부끄러움에 가슴을 쳐야 했다. 생명에 대한 외경, 사랑의 생활, 노인공경 같은 삶속의 실천덕목들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 때문이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다는 자각에서이다. 교황은 말씀하신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노인들에게 깊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노인은 어떤 경우에도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존재이다라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봤다. 우리 사회 현실을 돌아봤다.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가.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노인공경은 가정에서부터 어그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어버이가 불효를 입에 올리지는 않으신다.
노인들이 스스로 공경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우리사회는 너무 무심하다. 아예 눈길을 주지 않는 듯 하다. 노인공경 실천을 게을리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효성 지극한 가정의 미담을 전해 들을 때면 얼마나 부러웠던가. 우선 가정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정에서 어른 공경이 이뤄져야 사회, 나아가 국가적으로 확산되어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건강한 사회로서 제자리를 찾게 되지 않을까.
노인의 지혜를 사자
우리사회의 노인복지 시책 역시 단편적이고 너무 형식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경로당을 아무리 많이 지은들 추운 겨울철 난방이 되지 않고 있다면 무슨 소용인가. 노인들에게 몇 만원의 교통비를 지원하고 한달 20만원 일자리를 몇 천개 더 늘린다 한들 소외감과 외로움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다. 제주지역도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장수를 브랜드화 하자는 캠페인이 나오는 것을 보면. 장수의 섬이라고 불릴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제 노인들의 지혜를 높이 사는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제주지역사회를 일구어 온 그분들의 노고에 대한 보답이 미약하다. 한편으로는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어릴적에 질서가 있어서 평화로웠던 시골마을 풍경을 떠올려 본다. 어느 마을이랄 것 없이 좋은 일, 궂은 일에 중심이 되는 노익장 어른이 버티고 계셨다. 대소사를 주관하셨던 어른들. 그분들의 지혜로 모든 일이 아무 탈 없이 성사됐다. 어떠한 갈등이라 하더라도 그분들의 중재로 조정이 가능했다. 노인들의 직관력과 통찰력, 혜안은 하늘이 내리는 은혜이다. 우리사회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하고 높이 사야 한다. 노인복지 역시 형식이 아니라 질적 향상을 모색해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원로들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우리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현안과 갈등 해결에 그분들의 동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각 마을, 기관 단체별 원로회의를 부활시키면 어떨까. 그 대표들로서 제주지역원로회의 같은 회의체를 만들면 어떨까. 노인들을 위해 쓰이는 비용면에서도 훨씬 나을 것 같다.
“서로 다른 세대는 서로를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재발견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을 다시금 새겨보면서.
(언론개혁제주포럼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