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제주체육 현장속으로>
훈련장소 없는 전지훈련의 메카
제주도, 현장목소리 외면...인프라 없는데 훈련팀 유치에만
겨울비 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렸던 지난 1일 제주시민속오일시장. 흐린 날씨 때문인지 불 꺼진 상가가 즐비한 시장 안은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어두컴컴한 시장 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리는 모습이 목격됐다. 그들이 지난 후 또 다른 무리가 그 뒤를 따랐고, 비슷한 상황은 시간차를 두고 계속됐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제주서 전지훈련 중인 대한민국 육상 선수들. 삼성전자 육상팀을 비롯해 배문중·고교, 강원도대표팀, 제주시청 육상팀, 제주학생육상부원 등 10여개팀 100여명.

4년 전 부터 제주를 주 전지훈련지로 방문하고 있는 삼성전자육상팀 고정원 코치는 “제주가 장거리 선수들에겐 아직까지는 가장 좋은 훈련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 코치는 “제주가 좋은 장소인거 맞지만 비가 오면 마땅히 훈련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 선수들은 궂은 날씨에도 훈련을 해야 하는데 제주는 그런 곳이 없다”고 말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선수들은 제주종합경기장 2층(관람석 뒤)을 주로 이용했다. 적어도 비는 막아주기 때문. 하지만 내년 전국체전 준비에 들어간 경기장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그마저도 이용할 수 없어 선수들이 비가림 시설이 된 이곳(오일장)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곳 상황이 훈련을 하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라는 데 있다. 물에 젖은 바닥은 미끄러워 조금만 방심하면 선수들은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과 시장 곳곳에 있는 배수로 역시 선수들의 안전한 훈련을 방해하고 있었다.
더구나 장날을 하루 앞둔 터라 장사 준비로 시장을 찾은 상인들 차량이 달리는 선수들 사이로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아찔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지도자는 “그나마 이렇게라도 훈련할 수 있어 다행이다”면서 “장날이면 훈련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김 코치와 함께 제주를 찾은 강원팀은 육상 단거리 종목과 투척(포환, 원반던지기 등), 도약(높이뛰기 등) 등으로 이들은 중·장거리 선수들과 달리 겨우내 몸만들기(웨이트 훈련 등)를 해야 하는데 제주에는 이들을 위한 시설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
제주종합경기장 내 웨이트 훈련장은 사실상 방치된 상태고, 한라수영장 내 마련된 훈련장의 경우 일반인들에게 개방, 훈련시간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투척 선수들인 경우 야외 훈련장이 없어 제대로 된 야외 (투척)훈련 한번 못하고 전지훈련을 마무리해야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또 다른 코치는 “제주가 ‘전지훈련의 메카’라고 하는데 정작 선수들이 맘 편하게 운동할 수 없는 곳이 제주인 것 같다”면서 “제주는 적어도 육상 선수들을 위한 전지훈련지로는 미흡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 몸에 밴 것일까. 대한민국 육상 전지훈련의 메카 오일장에서 만난 선수, 지도자 대부분은 “이렇게라도 훈련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터뷰를 마치고 오일장을 나선 시간은 이날 오후 4시. 날은 더 어두워져 어느새 검은 터널로 변한 시장 안은 달리는 선수들의 발자국 소리는 스산한 오일장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결국 제주도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제대로 된 인프라 시설 없이 숫자 채우기에만 급급한 탁상행정을 펼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