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대로 된 훈련장이 생기니까 1년만 견디자” 최근 만난 역도관계자는 이 같은 말로 선수들을 다독이고 있었다.
지난 10여년간 전국체전에서 선수단 메달의 30%정도를 수확한 역도가 제주체육의 ‘효자종목’이다는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제주체육의 근간인 제주역도의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10여년 전 제주실내수영장 체력단련실(현재 헬스장)을 개조해 사용하던 역도훈련장은 이후 제주도체육회관(지하)과 남녕고 인근 아파트 지하 주차장, 제주종합경기장 1층(남쪽)으로 자리를 옮겨 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유랑생활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현재 제주도청 직장운동부 소속 선수들은 남녕고 훈련장에서 제주도체육회 소속 선수들은 씨름장, 제주도교육청 소속 선수들은 중앙고 훈련장으로 흩어져 더부살이 훈련을 하고 있는 상황.
씨름장에서 선수들과 훈련 중인 제주도체육회 현수진 역도 코치는 “처음 이곳에서 훈련하라는 제안이 있었을 때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막상 훈련을 시작해 보니 나름의 훈련효과를 거두고 있다. 역도는 무대 위에서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다른이의 시선을 이겨내는 훈련도 필요하다. 씨름 선수들이 우리의 관객인 샘이다”고 말한다. 오랜 유랑생활을 통해 얻은 긍정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현 코치는 “그전 훈련장은 천정도 낮고 기둥도 많아 훈련이 힘들었는데 그나마 이곳은 넓으니까 전보단 나은 훈련장입니다”
씨름장에는 수십명의 선수들이 모래판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선수들 틈에 역도부원들은 씨름장 관중석 바닥에 매트(훈련다이)를 깔고 임시 훈련장을 만든 것이다.

역도 간판 사재혁, 돌아온 정한솔, 김지현 재기를 꿈꾼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제주역도는 올 시즌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한국 여자역도의 간판 김수경과 양은혜(이상 제주도청)는 지난해까지 각각 12년·9년 연속 메달의 주인공으로 그동안 이들이 전국체전에서 수확한 메달 수는 모두 58개.
김수경이 36개(금 31 은 4 동 1개, 역대 최다), 양은혜가 22개(금8 은9 동 5개)다. 역도 여제 장미란 선수의 기록이 10연속 3관왕임을 감안한다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낸 이들의 기록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다.
제주도역도연맹 최영순 전무이사는 “매년 새로운 선수들이 이들의 기록에 도전한다”면서 “그녀들이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건 피나는 노력의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 2010년 전국체전에서 3관왕(당시 남녕고)에 오르며 제주역도 기대주로 평가받았던 정한솔(22, 제주도청)과 절친인 김지현 역시 제주로 돌아왔다.
고교 졸업 후 경북개발공사로 스카우트되면서 잠시 제주를 떠났던 이들 역시 올 시즌 고향에서 재기를 위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병환중인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에 타지에서 운동에 전념할 수 없었던 이들. 이적 1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이들은 헬스클럽에서 운동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역도에 대한 집념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런 이들을 다시 받아준 이가 바로 오승우 제주도청 역도 감독이다.
지난해 8월 극적으로 제주도청과 계약한 이들은 이제 전국체전 메달을 목표로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정한솔은 “맘이 편하니까 훈련도 잘되는 것 같다. 부상 없이 몸을 만들어 좋은 성적을 내겟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지현 역시 “올 시즌 반드시 메달 2개 이상을 따겠다. 그것이 운동을 다시 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 시즌 부터 한국 남자역도의 간판 사재혁(28, 제주도청)이 제주대표로 전국대회에 출전한다.
지난해 여름 런던올림픽 남자 77㎏급에서 인상 2차시기에 162㎏을 시도하다가 팔꿈치 골절로 경기장에 쓰러져 올림픽 2연패에 실패했던 사재혁은 지난해 말 제주도청으로 이적, 오는 전국체전 출전을 목표로 재활중이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77㎏급에서 우승, 16년만에 한국 남자역도에 금메달을 안긴 사재혁의 합류로 제주도청 역도팀은 크게 고무된 분위기. 그간 승승장구 하던 여자 선수들과 달리 지난 10여년간 남자 선수들은 메달(금)을 수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정한솔과 김지현, 새로 둥지를 튼 사재혁이 올 시즌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도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제주도는 보금자리 없이 유랑생활 중인 역도팀을 위해 사업비 총 45억원을 투입, 제주도체육회 내 다목적체육관 증축(2014년 초 완공)해 역도경기장과 스쿼시장, 체조보조경기장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