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낸 선수 자만할까봐 축하보다 지적, 성적 추락선수는 격려”
“태권도하는 후배들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었으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2년. 한용식(46) 영주고등학교(옛 제주공업고등학교) 체육교사는 청소년 태권도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맡아 세계대회에 출전했었다.
그가 이끌고 출전한 여자 청소년 대표팀은 ‘제4회 세계청소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10개 체급 가운데 9개 체급을 싹쓸이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값진 우승을 일궈냈다.
한 교사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체육발전 유공자로 선정돼 최근 대통령 체육포장을 수여받았다. 세계대회 우승 당시 국가대표팀 선수들 뒤에서 묵묵히, 그리고 때로는 악역을 자처하며 선수들을 지도했던 한 교사를 만났다. <편집자 주>

한 교사는 “대회 때 마다 어린 선수들이 긴장한 탓에 온 몸이 굳어 있어 마사지를 해줬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면서 “그랬던 선수들이 1등을 했을 때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 한 교사는 2005년에 열렸던 ‘제3회 아시아청소년태권도대회’에서도 코치로 합류해 종합 우승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는 “제가 가르친 선수가 제 기량을 발휘할 때마다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도 그런 것이 한 교사는 고등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촉망받던 태권도 선수였다.
단지 도복이 멋있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3학년 때 태권도를 시작한 한 교사는 처음나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유했고, 때문에 이후 태권도 명문이었던 중앙중을 거쳐 오현고로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한 교사는 고3 때 나간 전국체전에서 불의의 무릎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한 교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그래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후 마음을 다잡은 한 교사는 한국교원대에 진학해 체육교사의 길을 걸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서 였을까. 한 교사는 영주고로 발령받으면서 태권도와의 인연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당시 학교 방침에 따라 전교생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 교사가 지금까지 배출한 유단자 졸업생은 무려 2000명에 이른다.
현재는 학생들이 태권도를 기피하면서 3년 전부터 태권도 수업은 중단된 상태다. 그는 “학생들이 싫어하는 데 굳이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중단하게 됐다”며 “약간의 아쉬움이 들지만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현재 영주고 태권도부에는 27명(남자 20명, 여자 7명)의 남녀 선수들이 있다. 한 교사는 태권도부의 총괄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그는 “저도 그랬고 선수들 역시 한두 번씩 고비가 찾아오기 마련”이라며 “선수들이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영주고에는 남녀 태권도부가 같이 운영되고 있지만 남자부에 비해 여자부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실정이다. 더구나 제주도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한 교사는 “남자부의 경우 여러 중학교에서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지만 여자부를 육성하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한 학교에서 많아야 1~2명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에서 명문팀이라 불리는 학교들은 지도자와 학부모, 학생 3박자가 잘 맞아 떨어져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어 선수 육성이 잘 이뤄지고 있는 반면 제주지역의 경우 환경이 열악해 제대로 된 태권도 연습장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제주도의 지원으로 현재 영주고에 태권도 연습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
이에 한 교사는 “우리 학교 선수들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선수들도 아무 때나 와서 연습할 수 있게끔 연습장을 개방할 예정”이라며 “태권도를 하는 후배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그는 “제주가 전지훈련의 메카로 알려져 있는데 지도자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항상 연습할 공간이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때문에 제주도 차원에서 스포츠 산업의 발전을 위해 태권도 연습장을 더 많이 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한 교사는 태권도 지도자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처우가 열악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 희망적인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제자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하고,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제자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하는 그에게서 아낌없는 제자 사랑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졌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운동을 마친 학생들이 한 교사를 찾아 인사를 했다. 학생들의 인사에 그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우리 내일도 열심히 해보자”라며 화답했다. 그의 태권도 인생 제3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