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가 주는 기쁨
육체가 주는 기쁨
  • 제주매일
  • 승인 201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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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자신의 시체와 함께 살고 있다”

티베트의 승려 쇼갈 린포체의 글을 보고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터진 느낌을 받았다,

띵 하는 순간이 지나고 나자 난데없이 웃음이 터졌다. 시체를 위하여 날마다 먹이고 씻기고 꾸미고 가꾸는 내 모습이 떠오르니 갑자기 삶이 희극적으로 보여  참을 수 없는 웃음보가 터졌다. 아무리 애지중지 하더라도, 육체는 호흡이 멈추면 시체일 뿐, 그의 통찰이 서늘했다.

X광선을 처음 발명한 과학자는 길을 걷는 사람들이 모두 뼈다귀로 보여 혼자 히죽거렸다는 일화가 있다. 뼈다귀들의 행진을 보며 그들의 외표가 점잖고 화려할수록 미소가 떠올랐으리라. 제 아무리 잘 난 사람도 X선 앞에선 속수무책이었을 터! 한마당의 홍소가 그치고 나자 숙연함이 가슴 깊이에서 밀려왔다. 밥 먹고 새끼 키우느라 정신없이 보낸 세월 속에 시체가 되고 말 내 육신을 오로지하여 보낸 시간들이 무두 일어서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은 섬뜩했다.

허나 모든 삶의 소통은 육체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니 어쩌랴. 산다는 건 육체를 돌보는 일이 아닌가. 그 순간에 시체와 함께 산다는 또 하나의 나는 누굴까 의문이 솟았다. <나>라고 믿고 사는 이 몸이 시체가 된다는 건 분명한 데  함께라면 몸 말고 어떤 다른 존재가 있다는 얘기다. 또 한사람의 나는 어디에 있지, 무엇으로 알 수 있지, 근원적 물음이 뒤따랐다.

수행으로 육체를 제어하는 탁월한 사람을 현자나 성자로 존경한다. 육체를 훌쩍 넘어 선 무언가를 소망하는 본성이 인간 속에 있음이다. 육체의 욕구에만 몰입하는 삶을 낮게 보는 우리의 습성도 그렇다. 오로지 육체의 지시에 충실하여 게걸스럽게 살던 사람의 임종이 허망하다는 것도 본다. 육체만으로는 뭔가 잘못 살아 온 절망감을 막을 길이 없다. 죽음 후의 향방에 대하여 확신에 찬 임종을 보기가 어렵다. 생기가 있는 동안 육체는 시체와 분명 다른 존재이더라도 숨결하나 그치고 나면 시체일 뿐, 누가 부인할 수 있는가.

저 성자는 이 명백한 사실을 직시하고 시체일 뿐인 육체에 함몰하여 사는 일에 경종을 보내고 있으나, 나는 육체를 사랑한다. 육체가 있기에 얻는 특혜와 기쁨을 어떻게 다 집어내랴. 과즙이 차오른 열매를 한입 깨물 때 오는 혀끝의 달콤함, 장미의 향기, 휘파람새의 노래, 삼라만상이 뿜어내는 색체와 형상, 이 모두가  육체가 있어 누리는 몸의 향연이다. 몸은 이상하게도 오감이 총동원하여 쾌감을 선사하고 있음을 본다. 성희뿐 아니라 일상의 신체기능 곳곳에 쾌감이 장치되어있다. 수유, 배변의 기능에도 쾌락이 있고 고통 속에도 어떤 기쁨을 만날 수 있다. 도처에 재난과 질병과 비애가 깔린 지뢰밭이 인생의 여정일지라도 육체로 해서 솟아나는 열정과 욕망으로 하여 삶이 지속되고 있음을 누가 부인하리.

억겁의 시간 속에서 보면 찰나일 삶도 그러기에 더욱, 육체를 입고 태어난 건 기적이라 아니치 못하리라. 그 일이 진화라면 저 미세한 아메바에서 시작하여 우주를 섭렵하는 문명을 이룩한 존재가 되기까지, 견뎌온 세월과 이룩해 온 결과는 얼마나 눈부신가. 인간의 탄생이 창조라면 세상을 주관하도록 하신 신의 의도는 은총임이 분명하다.  

시티 오브 엔젤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한 천사가 지상의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천사의 특권을 내어 던지고 인간이 되기를 열망한다. 인간의 감각으로 여인을 사랑하려는 그의 소원은 처절한 대가를 치루고 이루어져, 드디어 육체가 주는 뜨거운 환희를 체험하지만, 다음날 그녀가 차에 치여 죽고 만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성찬을 차리려고 아침 일찍 자전거에 올라 시장엘 가던 길이었다. 사랑의 극점에 닿을 수 있었던 희열에 몽롱하여 모퉁이를 돌아서는 자동차의 소음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산들 바람에 머릿결 흩날리며 황홀한 표정으로 페달을 밟던 그녀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인간이었기에 그 쾌락은 너무 짧았어도 그 둘의 절절한 사랑은 가슴속을 후볐다.

영생을 버리고 인간이 된 천사, 그는 순간의 사랑이 준 기쁨으로 기나긴 비통을 견디어 낼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사랑을 시도할까?

영화는 완벽한 천사의 삶보다는 속절없는 인간 삶이 더없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 피고 지는 지상의 꽃들이 찬란하듯이.

공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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