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바로 해사
졸바로 해사
  • 제주매일
  • 승인 201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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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바로 해산다” 어렸을 때 많이 듣던 얘기다. 그리고 이제 본지의 만화 제목이다. 만화를 그리시는 김종두 화백은 제주가 고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딱 좋은 제목을 선택했다. 제주어에는 표준말보다 몇 배 의미가 깊은 말이 많다. 가령 ‘베지근허다’를 타지의 사람이 정확하게 알아챌 수 있을까.

 ‘졸바로’는 부사어로 비뚤어지지 않고 똑바르게라는 뜻이다. 부연설명을 한다면 의복이나 졸바로 입엉 가야 호겟는디의 뜻이다.

 선거철이 되니 여기저기서 졸바로 하겠다는 소리가 들리지만, 언제 졸바로가 쉽던가. 얼마 전 육지부의 모 행정관청에선 하급 공무원이 무려 100억에 가까운 돈을 횡령하지 않았던가. 100억이 그처럼 적은 돈인가. 참으로 졸바로 해사 할 돈이었다. 졸바로 해사 할 법망을 잘도 피했다는 느낌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졸바로 하지 못한 결과는 충실히 공무에 임한 공무원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던 것이다. 미꾸라지가 되기는 쉽고, 졸바로 하기는 어렵다.

 오늘 신문에는 밤 11까지 산골학교 30명 모두 바래다주러 운전대를 잡는다는 기사가 나와 있었다. 누가 해야  할 일이 아니었는데도 스스로 졸바로 한 것뿐이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다 탔나요?” 지난 달 29일 오후 10시 강원도 삼척시 모 중, 고교 정문. 하굣길을 책임질 통학버스에서 운전기사가 환한 웃음으로 학생들을 맞았다. 핸들을 잡은 사람은 이 학교 교장선생님이었다. 버스 몰려고 대형 1종 면허를 따기도 했고, 교육청의 지원 한 푼 없지만 “정말 행복”하단다. 교직생활 38년 만에 이게 행복이구나 생각이 든다.  누가 읽어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졸바로 하면 자기도 행복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 전파를 한다. 특히 졸바른 얘기는 전파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쉽게 전파되기 마련이다. 앞의 예에서처럼 교장선생님이 산골학교 학생 통학용으로 대형1종 면허를 땄다는 것을 광고하지 않은들 누가 모를까.

 12월 19일 대선도 멀지 않았다. 각 후보가 공약하는 대로  ‘졸바로’ 된다면 얼마나 많은 꿈이 실현될까. 그렇지만 쉽지 않음을 누구나 안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재원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지금 실제도 각종 공약이 실현 가능성이 없이 허공에 뜬 계획이 아닌가. 돈만 있었으면 벌써 실현되었을 일이 하나둘인가.

 그럼에도 대선을 기대해 본다.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좋아질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세 후보만 산뜻하게 출마한 것도 좋다. 여러 후보가 출마해서 시끄러운 것보다는 느낌이 좋다. 문제는 ‘졸바로 해사’이다. 졸바로 하지 않으면 세 후보가 출마했다고 좋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정말로 이번은 졸바로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대선은 큰일이니  한편으로 어려워 보이지만 정치인들이나 관심을 갖는 무심사가 되고 그냥 일상에서 그렇듯이 별반 관심을 갖기 어렵다. 졸바로 하기보다 심드렁해지는 것이다.

 어차피 이런저런 일로 살아가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의 말처럼 살아가는 일에 조금은 어려워야 재미가 있다지만, 그러지 않아도 어려운데 어려워서 좋을 일이 뭐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졸바로 해사’ 어려움을 바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한다. 졸바로 하는 사람은 어려워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곤 한다. 바로 일어설 생각을 하지 엉뚱한 피해를 남에게 넘겨주려고 하지 않는다. 한 번의 실패에서 다시 배운다. 자기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큰일에서는 물론 조그만 일에서 조차 졸바로 하기는 힘들다. 졸바로 하기가 힘드니까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고, 차츰 해서는  안 될 곳으로 빠져든다. 아무리 달리기를 잘 한다 해도 출발선을 어기면 지는 것을 어렸을 적부터 잘 배웠으면서 출발선을 어기는 달리기를 해보려 한다.

 차라리 졸바로 해서 2등이 되는 것이 바로 1등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려 한다. 졸바로 해사 거꾸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는 것임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이웃에게 적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사람도 많았으면 좋겠다.

 ‘졸바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오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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