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 만사성’의 진실
‘가화 만사성’의 진실
  • 김원민 논설위원
  • 승인 200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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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것은 해바라기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탄식이었다.
 그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한 가정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는 부부를 중심으로 어버이와 자녀들이 한데 모여 생활을 하고 있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을 일컫는다.
‘가화 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사회도 건전해 진다는 뜻이다. 비슷한 뜻의 한자 성어인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도 가정의 중요성이 나라나 세계보다 앞섬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가정 해체 현상을 겪고 있다. 이혼과 저출산, 동거와 독신 선호, 자살, 가정폭력, 청소년의 일탈 등 여러 가지 가정문제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오늘의 세태는 가히 총체적인 가정위기의 시대라 아니 할 수 없다.
문제는 IMF 이후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가정 해체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가정 해체가 경제적 빈곤의 문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ㆍ문화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커다란 트렌드(trend)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최근의 통계 자료는 가정 해체의 원인을 잘 보여 준다.

‘반쪽 가정’자녀 크게 늘어

통계청의 ‘가구별 구성원 비교’ 자료에 따르면 자녀 없이 부부만 사는 가구가 지난해 11월 현재 전국에 걸쳐 210만2900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불과 2년 전인 2002년보다 약 15만 가구 이상 늘어난 숫자다. 이 같은 현상은 결혼한 자녀들이 고령의 부모를 부양하지 않거나 아예 자녀를 낳지 않고 사는 젊은 층 부부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최근 결혼한 부부 3쌍 중 1쌍 꼴로 이혼비율이 급증함에 따라 부친이나 모친 가운데 한 명과 함께 사는 ‘반쪽 가정’ 자녀들이 최근 3년 간 약 6만가구 정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다. 많은 가장의 실직과 가계붕괴로 인해 가족을 학대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가출 청소년의 10명 중 7명 가량이 가정에서 신체적 학대와 언어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이들 가출 청소년들은 집을 나온 뒤 술ㆍ담배, 절도나 돈 뺏기 등의 비행에 빠지거나 범죄에 이용되고 구타ㆍ성폭행을 당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가정 해체의 결과는 사회적 문제로 사회적 안전망을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고령화, 이혼율 증가, 핵가족화 등에 따른 가정 해체 현상은 저소득층 빈곤화 추세를 심화시키고 범죄를 비롯한 각종 경제ㆍ사회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만 해도 탈선한 유부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영아 납치를 청부한 사건이나, 불륜의 동거생활을 하던 20대 남녀가 자신들의 아기를 버리거나 때려 죽게 만든 일, 그리고 얼마 전 도내에서 빚에 시달리던 가장이 어린 세 딸과 노모와 함께 자동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등은 급속히 해체되는 가정의 위상을 드러내는 일들로 우리를 경악케 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가운데 종교계를 중심으로 가정을 살리자는 운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음은 그나마 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온다. 천주교의 경우 제주를 비롯 전국의 각 교구별로 평신도 조직을 통해 지난해부터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세상” 구현을 위한 운동(약칭:‘아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운동은 우리 가정을 해체 위기에서 지키고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원인의 가정 해체적 사회문제에 접근해 그 해결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사실 가정 해체로 갈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사회구조 개혁을 위해서나, 결식아동에게 제공되는 ‘부실 도시락’사건에서 보듯 총체적으로 부실한 사회복지망을 개선하는 대안으로서도‘아가운동’은 필요하고 또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우리 미래 가정에 달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미래는 가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서는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가정 문제의 해결 없이는 우리의 미래도 없다는 절박한 인식 아래, 종교를 떠나서도 모두가 이 운동에 함께 나서야 하지 않을까.

반다이크는 “대리석의 방바닥과 금을 박은 담벽이 가정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어느 집이든지 사랑이 깃 들고, 우정이 손님이 되는 그런 집은 행복된 가정이다”라고 했다. ‘사랑이 깃 들고, 우정이 손님이 되는’ 그런 가정을 만드는 것이 다만 꿈만은 아닐 터이다. 이제 가정 문제에 대해 통합적 관심과 대안을 내놓을 때다. 정부만 믿다가는 무너져 가는 우리 가정을 지탱할 수 없겠기에 말이다.

흔히 상투적이라거나 진부한 말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가화 만사성’은 아직 유효하다. 그것은 하나의 진리요 진실이기 때문이다.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고흐는 지금 구천의 어디쯤에서 한숨을 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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