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일종의 사회적인 관습 혹은 고정관념에 의해 달라 질수도 있고,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과 같이 요즘 모든 사람들의 주관에 따라서 ‘미인이다’ '아니다‘를 판정하는 것 같다.
세계 각국의 미인기준도 다양하다. 아프리카 어디에서는 입술이 두꺼운 여자가 미인이고, 중국의 봉건시대에서는 발이작고 가냘픈 여자가 인이다. 이는 봉건시대의 중국에서는 종족의 대를 잇기 위한 남아선호사상으로 남자만 낳아 여자가 부족한 시대였다. 그래서 여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어릴 때부터 철로 된 족 신을 신게 하여, 여자를 지키려는 사회풍토에서는 발의 작은 여자가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적인 미인의 기준에 따라 성형이나 화장으로 뜯어 고치고 미를 과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성형이나 화장(make up)같은 인위 적인 노력으로는 건강하고 청순한 여성의 미를 얻을 수 없다는 것도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율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착하게 살아온 과거, 진실한 마음씨, 소박한 생활, 그리고 살고 있는 한 가지고 있는 희망, 자비를 생활화하는 부드러움 등등 이런 것들이 인간의 아름다움의 퇴화를 상당히 막아주는 것도 사실이다.
글쓰기에서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신춘문예의 작품들을 보아도 그 글이 그 글이어서 정형이나 한 듯 엇비슷한 것도 있고, 성형해서 자연산이 아닌 냄새를 풍기는 작품들도 있다. 길이가 긴 수필에는 시(詩)보다 더욱 그러해서 제목만 봐도 이야기의 얼개를 짐작하게 된다. 대부분 주제가 가정(家庭)이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정(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독자들이나 심사자의 경향이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글 들을 선호하니 자연히 여성스럽고 맛이 감치는 모양으로 꾸미고 나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수필 경향에 대한 획일적인 성형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필을 경(硬)수필과 경(輕 )수필로 구분하고 있다. 서구의 것은 대부분 딱딱한 경(硬)수필에 속하지만, 지금의 우리의 글쓰기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경(輕)수필이 주를 이룬다. 경(硬)수필은 주제가 무겁고 좀 어렵게 풀어간다고 하여 중(重)수필이라고도 부르지만, 우리 눈에 착 달라붙는 사근사근한 맛이 덜하다.
수필이란 쓰기도 편하고 읽기도 편한 각자의 마음의 글로 정의를 내리고서는 대개가 일상의 자잘한 주제들을 글감으로 삼아 글을 쓰고 있다. 독자들도 복잡한 것보다는 인스턴트식품 같이 맛으로 눈으로 먼저 들어오는 글에 더 주목한다. 작가는 독자와 더불어 그들의 기호를 따라나서게 되고 일제히 가벼운 경수필로 성형을 해서 글들을 내 보낸다. 문화란 유행이며 경향이기 때문이다.
또 남의 글 가져다 도배하는 성형방법이다. 혼자 베틀을 놓고 비단을 짜서 어느 천 년에 적삼 한 벌 만들 것인가 하고는 고생 글쓰기보다는 인용이라는 핑계로 오히려 남의 글을 가져다 쓰는 것이 편하고 때론 그것도 모자라 근거 있는 글들도 뿌리를 잘라 자기 글에 꺾꽂이하거나 접붙이기를 해낸다. 그러다 보니 내 글이 네 글이 되고, 네 글이 또한 내 글이 되는 촌수가 가까운 글들이 많아져 작가 고유의 피땀이 서린 완벽한 자연산을 실로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 글에서 불법 성형이 너무 횡횡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순수한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한 작품 속에 얼마만 한 분량이나 될까?
글쓴이의 얼굴도 보이지 않고 고뇌의 흔적도 없는 순도가 약한 것들을 두고 아무개의 글이라고 이름 석 자를 다는 일은 강심장이 하는 일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빚어내는 ‘복사’와 ‘붙이기’로 짜낸 부실한 직물들이 얼마나 많이 쏟아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열심히 일한 개미가 노래하는 베짱이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문화 콘텐츠 시대에 살고 있어 재주껏 시류를 타고 무엇이든 잡히는 대로 자기화를 꾀하는 작법이 유행한다. 글은 곧 글쓴이의 얼굴이다 라기보다는 글은 곧 작가의 손재주라고 고쳐 불러야 할 것 때가 조만간 올 것 같은 우려를 한다.
글은 문장 속에서 죽은 사람 냄새가 나면 안 된다. 자기 얼굴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저자의 손맛을 보려고 하기보다는 민 살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한다. 적어도 수필에서만큼은 글이 곧 글쓴이의 얼굴이 되어야 하기에 성형으로 아름다워진 것들보다는 정직한 자연산 글들이 절실하다.
수필가 김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