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건축민원과 무기계약직 직원의 억대 금품 수수사건은 표면상 한 공무원의 도덕결핍증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전말을 자세히 뜯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면에는 제주시청 상층부의 허술한 시스템 관리에도 근본 원인(遠因)이 있었다.
시장을 포함한 관계 국-과장들이 공무원 비리 예방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시스템을 효과 있게 운영하면서 직원관리를 철저히 했더라면 힘 안들이고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번 비리 사건에 제주시청 상층부도 그에 대한 책임, 설사 그것이 도의적 책임이라 하더라도 전혀 없다 하지 못할 이유다.
억대 금품 수수로 비리를 저지른 제주시 무기계약직 강 모 씨가 건축민원과에서 근무하기 시작한지가 무려 13년이나 된다. 강씨는 그동안 건축 관련 상담 및 현장 지도는 물론, 일정규모 이하의 무료설계도면 작성 등의 대민(對民)업무를 주로 담당해 왔다.
장장(長長) 13년이라는 긴 기간을 같은 이권부서 같은 업무만을 처리하면서 수많은 건축 민원인들을 상대해 온 것이다. 그러기에 13년간 200여명의 민원인들로부터 총 1억 4000만원의 뒷돈을 주고받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맑은 물도 한 웅덩이에 오래 괴면 반드시 썩는다. 공무원도 한 이권부서에 오래 근무하면 썩을 수가 있다. 그것을 증거 해 보여준 것이 바로 이번 사건이다.
그동안 숱한 인사이동을 단행해 온 제주시가 어찌하여 강 씨만은 한 이권부서에서 13년 동안 근무할 수 있게 놔두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흔히 행정기관이 정기 또는 수시로 순환근무제를 실시하는 데는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씨의 경우는 한자리에서 13년을 근무했고 드디어 사고를 치고 말았다.
또 한 가지 의문점은 13년간 강 씨의 비위를 직속 상급자들이 눈치 채지 못한 점이다. 꼬리가 길면 밟히게 마련인데 강씨의 경우는 13년 키운 꼬리마저 얼마 전까지 어느 직속상관도 잡지 못했고 용케 밟히지도 않았다. 제주시청 시스템 관리가 엉망임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지만 같은 부서에서 13년 근속을 가능케 했던 원인과 같은 부서에서 조차 오랜 기간 눈치 채지 못하게 된 이유, 인사 배경 등을 철저히 밝혀내기 바란다. 그리고 제주시는 같은 부서 장기근속자들을 이 기회에 확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