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투 성공률이 50%가 넘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땐 아무생각이 없었어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느낌. 경기가 끝나고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어요. 지금도 그때 기억은 떠올리고 싶진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잘 모른다. 하지만 휠체어 농구계에서 그는 국보급 센터로 불린다.
지난 한․일전 아픔을 딛고 오는 10월 유럽 무대에 진출하는 김동현을 만났다.
장애..새로운 시작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해서...”
제주출신 휠체어 농구 국가대표센터 김동현은 그렇게 희미하게 남아있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달리기를 좋아했던 어린 김동현은 집 앞(사라봉 인근)에서 당한 (레미콘트럭에 치이는)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 장애인이 됐다. 그때 나이 불과 여섯 살.
“희미하지만 어릴 때 운동회(체육대회)에서 달리기를 했는데 1등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초등학교 6학년쯤 비슷한 사고를 당해 장애를 입은 선배가 휠체어 운동을 권하면서 농구선수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제주도장애인체육회에서 행정보조일원 일을 하며 국가대표팀 생활을 이어간다.
그가 제주대표 선수로 활약했던 지난 2009년. 대전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준우승을 이끌며 제주휠체어 농구의 중흥을 이끈다. 김동현인 활약한 제주는 그해 열린 나머지 4개 대회에서도 2위에 올랐다.
이적... 난 국가대표 김동현이다.
2010년. 김동현은 고향팀을 등지고 서울시청으로의 이적을 결심한다. 농구에만 전념하기 위해서다. 제주 입장에선 놔주고 싶지 않았지만 그를 더 이상 잡아 둘 수 없었다.
그해 영국 버밍엄 세계선수권에서 국가대표팀 주전 센터로 활약한 김동현은 상대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플레이로 유럽팀 관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김동현의 활약을 눈여겨 본 이탈리아 1부리그(6위) 소속 산토 스테파노는 지난해 말 그에게 러브콜이 보냈다. 유럽리그 진출의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국내에선 저와 대적할 만한 선수가 없어요. 하지만 유럽은 달라요. 제가 큰 편이 아님니다. 그들과 한번 붙어보고 싶어요”
유럽 1부 리그로 진출한 사례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처음이다. “몇년 전 일본 선수가 유럽(3부 리그)에 진출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1부 리그로 가는 건 제가 처음입니다”
해외 진출의 꿈을 이룬 김동현은 올 시즌(2012-2013)부터 팀에 합류, 주전경쟁을 시작한다. 계약 기간은 1년. 이적료는 약 1300유로(월, 약 187만원)다. 세금 없이 받는 리그 최저연봉이다.
산토 스테파노는 올 시즌 검증 기간을 거쳐 다음 시즌(2013-2014) 본 계약을 하겠다는 것. 이 같은 조건에 대해 김동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사실 아시아의 휠체어 농구 수준은 세계에서 하위권입니다. 그들 입장에선 당연한 얘기죠. 계약 조건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건 내가 세계 최고 리그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산토 스테파노는 이탈리아 리그 중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으며 최근 3년 간 유로컵(유럽 95개팀) 19위를 기록 중이다.
출국일이 다가왔지만 아직 할 일이 많다. 다음달 7일 김동현은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결혼식 직후 예정된 전국체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일.
“결혼식 바로 다음날이 전국체전이예요. 거기로 신혼여행을 가게 됐습니다. 체전을 마치고 14일 이탈리아로 출국해 바로 팀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신혼집은 거기에 마련했어요”
김동현?....누구..?
휠체어 농구계에선 ‘대적불가(對敵不可)’, ‘명불허전(名不虛傳)’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는 그야 말로 국보급 센터로 명성을 날라리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그를 잘 모른다.
“욕을 먹는 것 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건 무관심이죠. 사실 휠체어 농구를 경기장에서 보면 일반 농구 못지않은 재미를 느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장애인스포츠 자체가 사람들은 관심 밖이다 보니...”
이들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 그리고 무관심.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나가야 될 숙제다.
김동현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주눅들지 말고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