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말 속에서 ‘휸다이’라는 말이 몇 번 나와서 나는 처음에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했다. 두어 번 들은 후에야 ‘현대(Hyundai)‘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원자력 발전소의 현대 건설이 지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지만, 이 외국인은 아직 삼년이 채 안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매일 살고 있는 곳의 우리말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명이나 인명이나 표기 방식은 같은데 나가 만난 외국인들은 필자의 이름(Heo Gyegu)을 써주자 ’헤오 계규‘라고 읽었다. 그들은 박사고 교수였고 이 곳에 여러 달을 머물러온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우리에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있어 외국 말이란 이러한 것이다.
광주 버스 터미널에서 외국의 한 젊은이가 손에 지도를 들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해매고 있었다. 어쩐 일이냐고 물어 보니 자기는 이 절에 (불국사였다) 가려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는 ‘경주’를 ‘광주’로 잘 못 발음하여 부산에서 광주까지의 먼 길을 잘못 타고, 경주 가는 엉터리 버스길을 감상해가면서, 광주로 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짜 경주 사람들 틈에 끼어 헛수고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외국인들이 지도나 제주도에 대한 책자를 미리 사서 손에 들고 읽으며 여행 오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본다. 그들이 여기에 와서 렌터카를 타고 여행하거나 버스타고, 택시 타며 여행을 하려할 때 우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가려는 곳의 지명을 우리말로 발음 하는 일이다.
다른 말은 몰라도 택시 기사에게 ‘삼성혈’하고 말하면 기사는 삼성혈까지 데려다 준다. 외국인 가족이 지도를 손에 잡고 렌터카를 타고 중문 근방에 이르러. 차창을 내리고 “여미지?” 하고 길가의 우리에게 물어왔을 때, 우리는 손짓에 더하여 초등학교 특활시간 때부터 배운 영어 실력을 발휘하고는 “one mile( 1마일), right(오른쪽)”하는 식으로 단어 영어를 해주면 된다.
이 때 부끄러워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그들도 우리말 실력이 ‘여미지’ 정도인데 우리라고 토막 영어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당당하게 그러나 미소를 지으며 할 일이다. 그런데 그 외국인들이 다른 것은 손짓발짓으로 되지만 ‘삼성혈’ ‘여미지’만은 그것으로 되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삼성혈‘이나 ’여미지‘의 발음 기호가 표기된 사전이 나와 있을 리도 없는 것이다.
제주도를 소개하는 책자에, 지도에까지도, 영어로 표기된 우리 지명의 읽는 법을 표시하여 우리 지명이며 관광명소를 바르게 발음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방법은 영미인들이 읽는 영영사전의 하단 등에 나와 있는 발음을 써 넣는 방식을 채용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책자들 속에 한글 읽는 법을 삽입하는 것도 연구해 볼만한 일일것이다. 한글 읽는 일이 그렇게 쉬운 거냐고 하겠지만 한글 자모 24∼25개만 익히면 누구든 한글을 읽을 수가 있다. 꺽어놓은 작대기 같은 새로운 발음 기호 25개를 익히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 한글 읽는 법을 알고 나면 교통 표지판, 시내의 간판, 건물 벽에 수없이 피어난 울긋불긋한 글자의 꽃들 99%를 읽을 수가 있다 한자가 있는 일본과 중국에선 그 위대한 일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한글을 읽는 관광객은 이곳에 더 친근감을 느끼며. 간단한 우리말 회화도 익혀 갈 것이고 다음에 다시 오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어 일어 등으로 제주를 소개하는 책자들을 만든 것은 좋은 일이지만 거기에도 지명을 예를 들면 ‘日出峰’이라고만 적을 것이 아니라 ‘Ilchulbong’과 ‘일출봉’을 동시에 적어야 할 것이다. ‘日出峰’을 중국 사람들은 르추펑(rich?f?ng)에 가깝게 발음하는데 그 ‘르추펑’이 ‘日出峰’의 고향인 한국에, 그들이 정작 왔을 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말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저러 한 것을 연구해서 세계에서 제일 훌륭한 제주 여행안내 책자를 만들 일이다. 그래서 그것을 외국의 서점에 내 놓아서. 무가서(無價書)로서가 아니라, 정가를 받고 파는 것이다. 무가서는 임무 수행의 일이 채 개시되기도 전에 학살당하여, 때로는 집단 학살당하여 폐지 수집자의 손으로 넘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