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 새해 첫 달부터 현대판 ‘소도리 쟁이’들이 날뛰고 있다. 소위 ‘연예인 X파일’ 유출 파동의 후유증이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한 마디로 개명천지의 현대에 농경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소도리 맞추기’가 극성을 떨고 있는 것이다.
제주어에는 ‘소도리 쟁이’라는 말이 있다. ‘소도리 쟁이’는 바람에 떠도는 소문을 온 동네에 퍼뜨리는 사람을 일컽는 이름이다. ‘소돌이 쟁이’는 헛소문을 진실처럼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동네 사람들의 입과 귀를 통해 마을 전체로 전파시킨다. 철저한 익명성이 생명이다. 소도리의 진원지는 빨래터나 우물가, 일터와 이웃사람들이 모여 노는 곳이 된다. 가령 ‘어느 홀어멍 이영, 어느 홀아방 눈 맞았젠 해라’하고, 한마디 유언비어를 날리면 그 소문은 진실이 되어 삽시간에 날개를 달고 온 동네는 물론 이웃 마을까지 걷잡을 수 없이 날아 다닌다.
이쯤되면 사람들은 그 소도리를 사실인냥 믿어버리게 되고, 소문의 주인공들은 펄쩍뛰면서 ‘소도리 맞추기’가 벌어진다. 마을 청문회인 셈이다. 소문을 퍼트린 당사자와 소문의 해당자는 서로 대질하면서 소도리의 근원을 캐어가면 동네 사람들도 양편으로 나뉘어 거짓 혹은 진실의 규명에 합세한다. 문제는 헛소문이든 진실이든간에 양쪽은 모두 치명타를 입게 마련이다. 헛소문이면, 소문을 낸 사람이 ‘소도리 쟁이’가 되어 버리고, 사실로 들어나면 당사자들이 ‘거짓말쟁이’로 둔갑되어 불치의 화상을 입게 된다. 소도리가 잘못 돌면 마을 전체가 분열에 휩싸이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농경시대의 ‘소도리 시대’가 마감되고, 산업화 시대가 열리면서 대중매체들이 새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신문방송이 그 중심이다. 신문과 방송은 ‘알권리’라는 무형적 명분을 앞세워 지구촌들의 소식은 물론 경향 각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 소식들을 독자와 청취자들에게 시시각각으로 전한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 기사가 전부 진실만을 전하는 것은 아니어서 오보를 내는 경우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오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해서 항의하고 피해 소송을 내어 명예를 되찾는 일도 있지만, 결과는 ‘소도리 맞추기’와 마찬가지의 후유증이 남게 마련이다. 특히 대중매체 시대에도 유언비어는 큰 힘을 발휘하며 돌아 다닌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 언로가 막혔던 시절에 유비통신은 일반대중들에게 소돌이처럼 먹혀들었다. 선거철에 극성을 부리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흑색선전은 불신사회의 대명사이다. 흑색선전으로 말미암아 재기불능의 신세가 된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정보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터넷은 새소식을 전하는 총아로 등장했다. 신문방송의 ‘일방형 전달매체’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면 인터넷은 ‘쌍방형 참여매체’로서의 그 위상을 드러내고 있다. 어떤 소식이 인터넷상에 뜨면, 네티즌들은 그들의 의견을 댓글로 대답한다. 신문과 방송이 내보낸 소식들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네티즌들의 의견은 사이버 공간을 도배질하며 넘쳐 난다. 인터넷은 정보화시대의 순기능을 하도록 창조되었지만 그 역기능도 만만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번의 ‘연예인 X파일’ 유출·확산 이후 추한 몰골을 드러낸 것은 연예인의 사생활보다도 익명의 가면을 쓴 인터넷 누리꾼들이 아닐까 싶다. ‘연예인 X파일’은 사이버 상에서 유포될 만큼 유포되었고, 이어 파일내용을 바탕으로 해당 연예인을 야유하고 조롱하며 이어지고 있음은 사이버 테러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십을 좋아하는 욕구에 인터넷의 익명성이 합쳐지고, 규범의 적용을 받지 않은 인터넷의 환경이 결합하여 정보의 해일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문명의 이기(利器)가 인간들의 상호비방의 ‘현대판 소도리 쟁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정보화 세상의 요지경이다.
현 춘 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