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제주지역 독립운동가로 이창휘 선생(1897. 5. 27∼1934. 9. 9)이 선정됐다.
이창휘 선생은 제주 사람이다. 변호사로서 독립운동 관련의 수많은 사건에 자진 변호를 맡거나 무료 변호를 통해 애국적 의지를 드높이는 한편 조선농민사의 중앙이사로서 농촌계몽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1925년 10월 29일 천도교의 농민조직이었던 조선농민사의 창립총회에서 중앙이사로 선출된 그는 조선농민사 주최 농촌문제강연회의 주요 연사로 활약하면서 주로 농민들에게 필요한 법률상식 등을 강연하는 등 농민 계몽에 앞장섰다.
1926년 6.10 만세운동이 일어나 주동 학생들이 일제 법정에 서게 되자, 그는 이인(李仁) 등과 함께 학생들의 애국적 행동을 변론함으로써 민족 변호사의 행동을 보여줬다. 그리고 1927년 11월 일본 삼릉회사가 수력전기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일경을 앞세워 한국인의 토지를 강제 매수하려 하자, 허헌(許憲)과 함께 법률투쟁을 전개해 토지침탈을 저지시키는 쾌거를 올렸다.
또한 1928년 경남 도청년연맹의 항일투쟁이 발각돼 관련자들이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 자진해 변호를 섰으며, 1929년 4월 공명단의 단원들이 군자금 모집을 위해 망우리에서 일제의 우편물 수송차를 습격하다가 피체된 ‘공명단 의거’의 공판에서도 이인.허헌과 함께 민족적 입장에서 변호했다.
그는 ‘조선공산당 사건’과 광주학생운동, ‘간도공산당 사건’ 등 사회주의 계열 운동의 변호를 많이 맡아 사상변호사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러던 중 과로로 인해 병을 얻어 1934년 9월 9일에 서거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