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평화로운 섬이다. 이것은 우리가 예감하고 추구하는 상태인 동시에 나날이 펼쳐지는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평화는 세상의 모든 축복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며, 그것은 항상 아름답다. 여름날의 드맑게 빛나는 아침, 달빛이 비치는 밤의 정경, 산과 들을 수놓는 갖가지 색채의 풀과 나무, 한껏 자태를 뽐내는 꽃잎들, 평화스러운 분위기에 젖어 있는 자연을 볼 때 감동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의 어눌한 언어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그대로의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자연보다도 더욱 귀한 가치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마음 속에서 싹을 키우는 기쁨, 우리가 사용하는 고운 말로 나누는 친교의 평화는 훨씬 소중하다.
평화는 아름다운 축복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늘 평화가 결핍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에 ‘시작의 신’ 야누스(Janus) 를 위한 신전이 세워진 것은 기원전 6백여년 무렵이다. 영어로 1월을 January(재뉴어리)라고 하는 것도 야누스 신에게 바쳐진 달에서 유래한다. 이 선전의 문은 평화시에는 열리고 전쟁 때는 닫아 놓았다. 그런데 6백여년 동안에 단지 세 번, 그것도 아주 짧은기간만 이 문은 열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평화에 굶주린 세상이다.
오늘의 인류는 어느 때보다도 더욱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화를 원한다. 그런데 평화에 대한 욕구가 인간의 내면에 강하게 뿌리 박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결국 평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세상에는 남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졸렬한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질투는 남이 잘 되는 것을 자기의 손상으로 착각해서 스스로 내적 평화를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이웃과 불화를 조성한다.
“ 마음이 평화롭지 못한 이유는 쉴새없이 남을 경계하고 적대시하는 데에 몰두하기 때문이다.“(채근담) 우리가 평화를 추구한다면 먼저 마음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미움, 질투, 경계심, 이기심 따위를 과감히 내던져야 한다. 그 빈 자리에 고운 언어와 우정의 씨앗을 심는다면, 평화는 솟구치는 분수처럼 마음 안에서 자라날 것이다, 이렇게 자라난 평화의 나무는 가지를 드리우고 그늘을 만들어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포근한 쉼터를 마련할 것이다.
“저를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서양의 어떤 수도자는 자신의 존재 원인을 깊이 성찰한 끝에 이렇게 기원을 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평화의 도구로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놓는 뼈저린 발원을 하고 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평화는 아름다운 축복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정성어린 응답의 대가를 요구한다.
평화는 단지 전쟁이나 불화의 반대 개념만은 아니다. 우정과 안녕과 행복이 포함되고 유지되는 상황이다. 우리가 예감하고 추구하는 평화로운 섬은 우리가 지불하는 고귀한 대가를 밑거름으로 자라날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삶을 누리는 우리들의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갖게 할 것이다. 제주도는 참으로 평화로운 섬이다.
김 영 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