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sadness)과 우울(depression)
슬픔(sadness)과 우울(depression)
  • 제주매일
  • 승인 201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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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가족과 유명을 달리하는 등 극한 슬픈 사연들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슬픔이 아닌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을 배신당하고 하는 평상적인 슬픔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정서 가운데 가장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것이고 모든 문학과 예술의 전형적인 시금석 같은 것이 일 수 있다.

슬픔은 반드시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다. 구슬픈 음악을 들으면서 슬픔에 잠기는 것은 슬픔을 즐기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사사로운 슬픔을 밖으로 내밀어 항상 표현하지 않는 것이 고상하고 속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깊은 물이 소리 나지 않는 것처럼 극도의 슬픔은 밖으로 내밀려 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건강한 순간을 매번 고마워하지 않는 것처럼 슬픔이 없는 상태를 늘 기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슬픔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다. 물론 슬픔이 깊어지면 참담해지고 일상생활을 가로막은 지독한 번민과 고통을 수반할 수도 있다. 때문에 슬픔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재조명하기 위한 강제적으로 부여 되어 지는 잠깐의 생리현상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슬픔은 엉망이 되어버린 자기생활에 대해 시간을 가지고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막간’ 같은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슬픔은 때로는 남에게 터놓고 이야기 하면 완전히 가시지는 않을망정 많이 누그러질 수는 있다. 어떤 슬픔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 슬픔에 항복하고 말든가, 아니면 그것에 익숙해지든가 어느 한쪽을 선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신은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인간에게 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슬픔은 오래된 즐거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슬픔을 느낄 때 뇌 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며 어떤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는 것일까?

슬픔의 실체를 이해하고 분석하려면 생활과 동반되는 일반적인 슬픔보다 훨씬 더 복잡한 ‘우울’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지난 세기 동안 악명을 떨쳤던 질병들은 에이즈, 암, 심장병, 성인당뇨병, 등이었다. 요즘 이런 질병들의 위협에 못지않게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 질병으로 ‘우울증’을 내세우는 게  대세다.

우울증은 현대 정신병의 교과서적인 대표가 된 셈이다. 우울증은 신경질환을 일으키는 신경 화학적. 호르몬 적 장애를 일으키는 불치의 질병이라고 한다. 종착지는 자살이라는 것이다.

우울증은 현대적인 복잡하고 다양한 환경적인 삶의 우리 몸이 어떤 외부 도전적 환경에 상황을 분산 시킬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생긴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언제 오며 또, 얼마나 우리 몸에 해로운지를 예상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 의학계 보고다. 그 결과로 생기는 좌절의 배출구를 찾지 못하게 되면 생물학적으로 우울증에 걸릴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을 우울하게 만드는 원인은 너무도 많지만 대체적으로 우리들의 생활중심이었던 전통적인 원천들이 하나하나 무너져 내리고 또 사회적 병리현상도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문화에서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농경 마을에서 같이 평생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준 기술의 발달로 물리적인 사치를 누릴 수는 있지만 과연 그 자격을 누릴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의식도 따라 향상되었는가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과연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갈등하면서 공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면서 우리는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신의 인간 조건에 대한 성찰과 연민에 대한 갈등을 많이 겪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반응이 바로 우울증이라는 것이다. 과연 현대의학으로 우울증을 박멸할 수 있을 것인가?
삶의 방식이 변해가는 것을 막을 사회적 백신 같은 것이 결코 출현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는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그것을 피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우울이라고 말하는 것은 슬픔과는 그 뜻이 다르다. 슬픔은 어떤 대상을 상실했을 때 어느 기간 동안 서러움과 연민을 느끼는 정상적인 정서라고 할 수 있지만. 우울은 객관적인 상황과 관계없이 일어나는 정서의 병리현상이다. 슬픔은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는 효과적인 신호 역할을 해 줄 수도 있지만, 우울증은 남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바로 그 순간에 다른 사람들을 피해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우울증과 슬픔의 차이는 사회적 적응방식의 차이이다. 오래 지속되는 극단적인 슬픔은 어떤 친구나 가족들도 도와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 이러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우울증 환자라는 것이다.

문명인을 사로잡고 있는 만성적 우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감각에 대한 무능력이며 우리의 육체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 있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우울한 사람은 슬픔을 느낄 수만 있어도 크게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슬픔의 존귀함을 모르는 문명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상당한 재미와 쾌락을 맛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우울하다. 우울은 육체의 불쾌함이 아니고 마음의 변이이기 때문이다.

수필가 김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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