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테이가 남기고 간 잔상(殘像)
홈스테이가 남기고 간 잔상(殘像)
  • 제주매일
  • 승인 201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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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마시 파견공무원 김희훈

지난 14일 ~ 17일까지 서귀포시 관내 중학생 20명이 청소년 홈스테이 교류로 가시마시를 방문했다.

학생들은 가시마시에서 선발된 학생들 집에서 이틀 밤을 함께 지내며 생활문화를 체험하고, 가노중학교를 방문해 합동수업을 함께 펼쳤다.

그리고 도쿄에서 후지TV, 토요타자동차 전시장, 일본 과학미래관 등을 견학하고 돌아갔다.
홈스테이 일정 내내 생기발랄했고, 새로운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며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첫 일정으로 우리학생들은 친구가 될 이곳 학생들을 가시마시청에서 만났다.

설렘과 기대가 있는 첫 대면의 산만함에도 학생들은 프로그램의 진행에 집중했고, 처음 만난 친구와도 어색함 없이 다가갔다.

서로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우열이 없는“중학생 2학년” 그 하나였다.

저녁에는 가시마 시장님을 비롯한 호스트 가족들이 함께 참석하는 환영만찬이 있었다. 학생들에게는 자기소개 시간이 주어졌다.

양 시의 학생들이 확연히 구분되기 시작했다. 우리학생들은 영어로, 일본어로, 자신 있게 자기소개를 했다.

당연히 만찬에 참석한 일본 학생들의 가족들로부터 탄성이 나왔다.

이에 반해 일본학생들은 메모지에 적어 온 “안녕하세요.” 정도의 한국말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일본말로 자기를 천천히 소개했다. 때로는 통역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는 만찬장의 분위기에서 순간 보이는 상(像)은 우리학생들이 압권이었다.

그러나 보편적인 순간이 지난 후에 남아있는 두 학생의 잔상(殘像)은 결코 우리의 우월이 아니라 뭔가를 생각하게 하는 메시지를 던져 주는 듯 했다.

우리학생은 외국어를 구사하지만 외워서 말을 했다. 말하는 속도가 빨라서 유창한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말문이 막힐 때면 시선이 자꾸만 천정을 향했다.

하지만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곳 학생은 외국어로는 아니지만 생각하면서 말을 했다. 말하는 속도가 느려서 유창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시선은 이야기를 듣고 있는 대상을 놓치지 않았다. 말문이 막힐 때면 시선을 고정한 체 밝은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신했다.

잘하고 못하고의 구분이 아닌, 아주 다르게 느껴지는 두 학생의 모습이었다.

환영만찬이 끝나고 학생들은 이틀 밤을 친구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일본의 생활문화를 체험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일본의 학교생활을 체험하기위해 가노중학교를 방문했다.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33도를 넘는 땡볕인데도 밖에서 우리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도착하자 두 줄로 늘어서서 지나가는 우리학생들에게 태극기를 흔들며 열열이 환영해주었다.

환영식은 선풍기 몇 대만이 돌아가는 체육관에서 학생들의 중심이 되어 진행되었다.

매뉴얼에 따라 소품 정리, 공연, 교류프로그램, 안내 등... 매끄럽지 못하고 불안하게 진행되는데도 독촉하거나 질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작 땀을 뻘뻘 흘리는 학생들이 측은해 보였는지, 옆에서 말없이 소품만을 같이 날라주는 교육위원과 선생님의 차별 없는 손만 있을 뿐이었다.

환영식이 끝나고 우리학생들은 자기가 원하는 과목을 일본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았다.

우리와 다른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체육시간에 벗어놓은 똑같은 실내화가 똑같은 방향으로 정리되어 있는 것, 같은 행위를 한다고 해서 창의력이 떨어진다는 논리하고도 거리가 멀다.
특출하기보다는 자기 역할을 잘할 때 사회전체가 좋아지는 공리(公理)인 셈이다.
 
기다리는 시간마다 우리 일행들에게 시원한 녹차를 직접 갖다 주는 학생과 교육위원, 먼저 본 사람이 먼저 하려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생활의 보편적인 질서들이 학교교육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결론이기도 하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환송식이 있었다. 역시 학생들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무덥다는 이유를 달고서라도 몇 개의 순서는 생략할 거라는 기대를 했는데도 이들은 예외의 경우를 두지 않았다. 순서대로 빠짐없이 진행되었다.

우리가 답답해하는 것들이 이들에게는 정확함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 학생이 행사종료 인사를 준비할 즈음에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우리 여학생에게 내가 물었다.
“일본 학생들, 자기 역할 참 잘하지.”
“예. 솔직히 우린 이런 건.... 잘 못해요. 근데, 다른 건 자신 있는데.... 선생님도 일본에 혼자 있으면서 기죽지 마세요.”

우리학생들은 짧은 홈스테이를 통해 이곳 친구들이 잘하는 것들을 보고 배웠다. 그리고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에는 자신감이 더해졌다. 그 양(量)이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홈스테이의 결과물인 셈이다.

홈스테이를 멋지게 해주고 돌아간 학생들로 인해 나는 일본 친구들에게 어색한 우쭐함을 조금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홈스테이의 모든 장면이 끝났는데도 우리학생들의 희망적인 잔상(殘像)이 아직까지 내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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