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케이블 TV 한 채널에서 재미있는 다큐멘터리(documentary)를 본적이 있다. 인도 남부에서 코코넛을 이용해 원숭이를 산채로 잡는 내용의 프로그램이다. 코코넛 껍데기에 원숭이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어서 속을 모두 긁어낸 다음, 그 속에 쌀을 조금 집어놓고 끈을 연결해 말뚝에 단단히 매어둔다.
이 코코넛을 발견한 원숭이는 냉큼 다가와서 구멍 속으로 손을 넣어 쌀을 한 움큼 집는다. 그때 숨어 있던 사람이 다가가면 원숭이는 손을 빼고 달아나려 기를 쓴다. 하지만 쌀을 잔뜩 쥔 손을 빼내지 못해 결국은 사람에게 잡히고 만다. 쌀을 포기 하지 않은 대가가 이렇게 치명적인 것이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들도 이 원숭이처럼 눈앞 이익에만 눈이 멀어 포기해야 할 것을 제때 포기하지 못해서 치명적인 실패와 역경을 맞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이익과 권력과 명예를 포기 못해 위기를 스스로 자신의 만드는 경우를 본다. 모든 욕심은 때에 맞춰 포기해야 성공한 인생이다.
자신의 갖는 모든 기득권은 적정한 찰나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까지 오르는 것보다 내려놓는 것이 더 어렵다. 인기가 그렇고, 권력이 그렇고, 등산도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욱더 힘들다. 모든 기득권이나 욕심이 그대로 가질 수만 있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 삶의 이치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은 돈을 따라 흘러가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사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所有慾)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을 뿐이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고 드는 사람들도 가끔 본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不辭)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제주 올레 길에서 성 폭행을 위해 여성 살해사건이 그렇고, 육지 한 산부인과 의사가 여성을 죽이고 시신을 주차장에 유기 사건이 그렇다.
소유욕은 이해(利害)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맹방(盟邦)들이 오늘에는 적으로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事例)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無所有史)로 그 틀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간디는 이런 말을 했다.?"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그래서 크게 포기하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가난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돈이 많다고 꺼떡거리는 졸부(猝富)들은 모두 한 번쯤 생각해 볼 교훈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기 때문이다.
사실우리들은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地上)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긴 것들이 있다. 물론 일상에 소요되고 노력해서 모은 재산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 일까? 생각할수록 없어도 단순한 삶에는 필요가 없는 돈이고 물건이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이나 돈을 모으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主客)이 전도되어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불교아함경(阿含經)의 경구이다.“욕심 없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진실로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은 모든 공포를 초월한다. 헛된 삶으로 이끄는 그릇된?집착을 버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죽음에 대한 공포도 사라진다. 집착을 버리고 포기를 결단하면, 목숨을 다 한 것에도 만족한다.” 요즘 같은 불볕더위에 이런 불가의 경구를 음미해보는 것도 하나의 피서 법이라고 우기고 싶다.
수필가 김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