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paradox) 가치관
패러독스(paradox) 가치관
  • 제주매일
  • 승인 201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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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도전문 채널(신문사 방송) 정치뉴스를 시청하다 보면 정치평론가 들의 뉴스 평론을 을 자주 접한다. 공중파 방송 보다는 이념적 정치스펙트럼(spectrum)해설을 많이 볼 수 있다.  정치이념을 여당은 보수, 야당은 진보로 당연시 하는 경향을 많이 본다. 세대에서 이분법, 지역에서 이분법, 이념에서 이분법으로 구분한다.  이념을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완전히 구분하는 것이다. 과연 이런 이분법적 사고가 과연 옳고 좋은 것인가?

이념적 스펙트럼(spectrum)을 규정하는 말로 "(혁신, 진보, 좌파)와 (보수, 수구, 우파)" 가 있다. 사실 이 구분들은 그 의미가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혼용하거나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우들이 태반이다. 우선 진보와 보수는 사회변화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와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현재 존재하는 사회상태(제도나 법, 계급구조, 계층구조 등등)가 부조리하다고 보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진보, 현재의 사회상태는 비교적 바람직하다고 보면서 아주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변화만 제한적으로 필요할 뿐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입장은 보수다. 즉 이분법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이념적 스펙트럼은 어디까지나 서유럽에서 발생한 개념들이라는 것이다. 각 나라별로 역사적 경험, 사회적 분위기, 이해관계 등에 따라 진보니, 보수니, 좌파니, 우파니 하는 관념들은 각기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거나 혼용되는 경우는 있어도 우리 사회에서 와 같이 꼭 흑백논리, 즉 이분법으로 구분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왜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하는 이분법 생각을 선호하는 것일까?  이에 많은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유교역사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우리들은 국가에 충성심 표현이나 한 여성을 사랑하는 표현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변치 아니하는 마음이라는 표현으로 “일편단심(一片丹心)”이라고 한다. 오직 한쪽만 선택하는 것이 최고 가치로 인정하는 문화다. 또 국가나 조직을 위해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겠다는 말로 자신은 한쪽을 위해서 매진해야 높은 가치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이다.

그래서 우리들도 보통 양면적이라는 말에 별로 좋지 않은 느낌을 갖는다. 예로부터 심지가 곧고 일편단심으로 꼿꼿한 지조를 지켜온 사람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소신이나 신념이 자주 자주 바뀌면 곤란 하겠지만 양면성 자체가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다. 
세계 역사적으로 뛰어난 인물들 중에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신중하면서도 추진력이 있는 양면적인 성격이 소유자가 많다는 것은 세계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아인슈타인, 모차르트, 피카소  등 저명한 과학자나 예술가들은 상반되는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한다.

우리들의 삶에도 유연성이 단연 필요한 것이다. 21세기 무한 경쟁시대의 시대정신은 “패러독스 가치관”에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사람이 살다보면 자신의 환경이나 업무 실행에 상충되는 두 가지 요소들이 나타난다.

단편적인 예를 든다면 자신의 스펙을 쌓을 여면 시간적 제약으로 친구를 사귈 수 없고. 친구를 사귈 여면 스펙을 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패러독스 요소를 조화 시키지 못한다면 지금시대에서 잘하는 처세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스펙을 쌓아놓아도 친구를 동반하지 못하는 삶은 결코 성공한 삶은 아니다.

친구도 사귀고  스펙도 쌓아 이 두 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상승효과가 탄생 되는 것이다. 그러나 획일적인 이분법 논리와 흑백논리가 판을 치는 우리 현실에서 양면적인 패러독스 생활을 잘해 나가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무한 경쟁시대에 다양성을 수용하는 사회에서는 상호 모순을 조화시키는 한 차원  높은 삶의 가치관이 필요하다. 이게 패러독스 가치관이다. 이 복잡한 세상에는 답이 하나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에는 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밝음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고 썰물이 지면 밀물이 온다.  상반되는 요소가 잘 어우러지면 큰 힘을 내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다. 사람이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인생을 살려 며는 한 가지 전문능력도 필요하지만 외견상 상충되는 요소들을 슬기롭게 처리해 나가는 능력도 필요하다.

세상은 부조리와 패러독스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부조리와 패러독스에도 순기능이 더 많아서 상관없이 흘러간다고도 한다.

거짓을 참이라고도 한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힘으로... 참을 위해 본능적으로 저항도 해보지만, 거짓에도 패러독스 순기능은 있다.

부조리는 세상에 가득하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패러독스라는 말도 있다. 영겁의 시간 흐름에 비하면 한 인간은 거역할 수 없는 나약한 역설적인 존재이기도하다. 우리들은  한 발자국 물러나 모순을 삶으로 승화시키는 일을 생활화하자, 이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화성법(和聲法)에 맞지 않는 의도적인 불협화음(不協和音)의 음악도 세사에 흔들이는 영혼들에게 필요한 음악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필가 김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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