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통은 차량, 사람, 리어카 등으로 시끌벅적 생명의 고동소리로 요동을 치고 있으나 이런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는 섣불리 동화하지 못한 채 두리번거리며 가지를 팔지 못해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의 부자유스러움을 덜어줄 의무감이라도 느낀 것일까,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나는 할머니에게 이 가지는 직접 재배하셨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외도 넘어 연대에서 사는데 우영밭(텃밭)에서 자신의 심심해서 취미삼아 기른 것이란다. 가지는 건강에도 좋고 먹는 방법도 다양하여 아주 좋은 채소란다. 날것으로도 먹을 수 있고, 김치 해도 되고, 삶아 먹어도 일품이라는 말을 하신다.
할머니는 내가 쉬는 동안 계속 말을 하신다. 가지가 독성이 없어 푹 삶아 먹으면 괜찮고, 또 먹고 나면 몸이 한결 든든해지고 가볍다고 덧붙인다.
나의 와이프가 찬거리를 사기위해 시장을 돌아보는 한 30∼40분 시간에 할머니와 나의 대화는 계속 되었다. 제주시의 전형적인 바닷가 갯마을 ‘연대’가 고향이며 나이는 올해 여든이란다.
그리고 슬하에는 2남 2녀가 있으며 아들내외와 같이 산다고 했다. 버스 타고 오일장에 다닌다고도 했다. 왜? 아들내외와 같이 사는데도 이 더위에 이런 고생을 하시냐고 물었더니 취미생활 이란다. 늙은이 취미생활로는 딱 이라는 게 할머니 설명이다. 그러나 깊은 주름이 가득한 얼굴과 남루한 옷차림으로 봐서는 반드시 취미생활만은 아닌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나도 어머니 생전에 잘해드리지 못한 뉘우침과 불효된 생각에 이 할머니와의 대화는 더없이 좋은 분위기로 이어 졌고 어느 정도 진입장벽이 허물어지자 할머니로부터 뜻밖의 얘기가 나왔다.
조금 전에 아들 집에 같이 산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시골집에 혼자 산다고 했다. 여름에는 주로 우영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팔아서 용돈을 마련하고 또 이웃동네 식당에 가서 설거지를 해주고 용돈을 벌어 산다는 것이 할머니의 고백이다. 그러면서 아들집에 얹혀살기보다는 혼자 사는 것이 백 배 편하다고 애써 강조하신다. 그런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과 서운함이 동시에 배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들의 위신을 폄하하지 않기 위해 아들과 같이 산다고 하는 하얀 거짓말은 이 할머니의 내리사랑에 나도 조금씩 이유 없이 초초해 져 갔다.
주섬주섬 내뱉는 할머니의 말에 담긴 삶의 무게가 점점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무겁게 내게 전해 온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다. 할머니가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혼자만이 삶으로 인한 진한 외로움과 막막함이다. 자식이 있어도 없는 것과 같은, 이른바 무연(無緣) 사회의 ‘나 홀로 삶’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국민연금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할머니와 같은 처지의 독거노인이 2000년 55만 명에서 올해는 119만 명으로 2.2배나 증가 했으며, 2035년에는 무려 343만 명으로 추산된다는 발표다. 1인가구가 전체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10년에 이미 24.4%에 이르렀다.
경제 협력개발기구(OECD)30개국 중 노인의 질적 생활수준은 29위로 노인가구의 상대적 빈곤이 가장 심각한 나라로 꼽힌 것이다. 노인들의 연평균 소득(1만4238달러)도 미국의 절반, 일본의 3분의 2수준이다. 각국의 물가수준을 반영한 PPP(구매력 평가) 소득액 기준으로도 OECD국가에서 하위권(23위)이다.
노인들의 자살률도 OECD에서 1위이다. 이런 현실에서 제일 문제는 1∼2인 가구의 70%가 60대 이상 가난한 노인들이라는 것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가족 울타리에 의지하던 과거의 ‘가족안전망<대가족>’이 최근 들어 급격히 해체되고, 지금의 풍요를 이룬 어머니 세대의 삶이 급속히 고단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현상이다.
국가가 책임지는 ‘공적인 안전망’이 있긴 있지만 성긴 안전망으로 안전망에서 빠진 가난한 노인들의 삶은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내도 돌아 올 시간이 되고 해서 할머니와의 대화도 이제 끝에 다다랐다. 나는 가지 몇 개를 사면서 만 원 짜리 지폐 한 장을 할머니 손에 쥐어드리고 거스름돈을 사양했다. 그리고 할머니 ‘건강헙써’하는 작별인사에 이름도 성도 모르는 할머니의 눈가에는 이미 물기가 가득했고, 나 또한 울컥해지는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
노인 문제는 앞으로 더욱더 심각해질 수 있다. 2017년에는 인구 14%이상이 노인 고령사회에 접어든다고 한다. 노인들의 외로움과 막막함은 지금 노인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의 문제다. 왜냐하면 늙음은 시간만 다를 뿐 어느 누구도 같은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수필가 김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