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칼라 판으로 코딩을 해서 일회용이 아닌 계속 활용해주라는 홍보전략 이다. 나는 이를 치우면서 재미 있거나 즐거운 우편물이라기보다는 참담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 집 쓰레기가 늘어나는 불편함도 있지만, 자신의 운영하는 식당 메뉴를 홍보하기 위해서 동원된 단어들을 보면 정말, 순, 진짜 100%, 원조, 원가에 50%활인…… 등등 수상쩍은 단어들이 그대로 우리 불신사회를 보여 주는 듯해서다.
순(純)자가 붙은 것일수록 순수하지 못한 것이 오늘의 시대상이기 때문이다. 한혜진씨의 “정말 진짜로 진실을 보여 봐” 라는 대중가요가 현사회의 세속을 말해주고 있다. 아니 세속적인 것만도 아니다. 문화적, 정신적, 종교적인 영역에도 그 슬픈 현실에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세상을 어둡게 본 결과 일까?
우리들의 일상이 그렇다. 좋으면 좋은 것이지 정말 좋다. 진짜 좋다고 해야 좋은 것이 입증되는 것인가? 진짜, 정말을 붙이지 않으면 좋지 않든지, 좋은 순도가 많이 모자라 다는 것이다.
삶에 진실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존재 할 뿐이다. 요란스럽게 꾸미고 치장하는 것은 대부분 거짓이나 가짜다. 겉만 살짝 금을 입힌 도금(鍍金)반지가 진짜 황금 반지보다 더 번쩍거리듯, 거짓말일수록 화려하고 번지르르 하다. 크든 작든 거짓은 항상 진실의 요소를 훔쳐 쓰기 마련이다. 그래야 남을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 선배들의 말을 빌리면 어떤 다툼에 있어서도 강하게 자신의 잘못을 부인 하는 사람일수록 긴 사설(邪說)을 늘어놓기 일쑤라고 한다. 한참 듣고 있노라면 앞뒤가 마구 뒤틀리고 교활한 조작의 냄새가 물씬 거린다. 거짓말이 통하지 않으면 느닷없이 성경책을 끼고 나와 “하나님 앞에 명세 한다.”거나 “ 양심에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등의 확인 할 방법이 없는 작전으로 상대방을 코너로 몬다는 것이다. 종교와 하늘과 양심은 그런 자들의 잘 쓰는 소도구(小道具)다.
제 말의 진실성을 자신의 삶과 인격으로 뒷받침 못하는 사람들이 양심, 도덕, 선, 인정 같은 고상한 가치를 가지고 상대방을 공격한다. 어느 공교육 수장이라는 자가 법망(法網)을 피해 은밀히 거래한 억대의 돈이 선의(善意)의 정으로 도와주었다고 법망을 피하려는 주장은 대낮에 강도 짓하는 도둑놈보다 더 무서운 두 얼굴의 기만과 위선이다.
선의는 제입으로 떠벌리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선의는 스스로를 감춘다. “도덕경”에 나온 말이다. 선행무철적(善行無轍迹)이라 했다. 선한 행위는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정을 베풀 곳이 넘치도록 많은 터에, 하필이면 남몰래 뒷전에 주었다면 끝까지 자신의 선행은 감추어야 도덕경의 말하는 선행무철적(善行無轍迹)이다. 그래야 빛이 나는 것이다.
남의 허물에는 성급히 단죄의 칼을 뽑아드는 도덕군자들이 자신의 흠이 드러나면 아랫사람이 한일이라 발뺌을 하거나 공소시효니 무죄 추정이니 하면서 실정법 보호막을 둘러치다가, 법리(法理) 에 군색해지면 초법적 윤리관 (倫理觀)을 펼치며 법과 상식을 뛰어넘으려고 야단법석을 깐다.
물론 유. 무죄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니 누구도 함부로 예단해서도 안 되고 예단 할 수도 없다. 다만 자타(自他)에 대한 이중적 기준이나 상식과 순리를 넘어선 판단은 일반 국민들의 인정받기가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변명이 필요한 선의의 판단은 선에 대한 모독일 뿐이다. “선한 일에도 신중해야 한다.(必眞僞善)”라는 자자성어는 춘추전국시대부터 오늘까지 내려오는 진리다. 법률학 사전에서 선의는 어떤 사정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 악의는 그것을 인식한 상태를 뜻한다고 정의한다. 윤리적 선악(善惡)과는 의미가 다르다. 더욱이 범죄성립 여부는 선의와 악의가 아니라 고의와 과실에 따라 결정된다. 마음의 동기는 정상참작이 사유일 뿐, 범죄의 고의를 면제하지 못한다는 것이 판례다.
법률적 고의와 윤리적 선의를 한데 뒤섞어 우리들의 이해를 더욱 헷갈리게 한다. 제 잘못은 모두 선의로 덮어버리고 남의 일은 모두 악의 행동으로 내모는 것이 패거리 싸움터의 천박한 정치판이다.
야당 할 때는 권력을 모질게 비판하다가 여당이 되면 권력을 변호하기에 급급 하는 정치를 우리 자주 보아왔다. 남의 약점을 샅샅이 파헤치던 사람들이 자신과 관련된 의혹은 어물쩍 넘기려 든다.
똑같은 문제라도 내가 하면 정당한 공권력행위이고 남의 하면 네거티브 행위이다. 상대방에게는 고도의 투명성을 요구하면서 제 얼굴 가림의 불투명한 너울은 좀처럼 변치 않는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도 자신의 할 때는 옳았던 일이고, 남이 추진 할 때는 그릇된 일로 변해 버린다.
아무리 교묘한 거짓말도 어설픈 진실에 미치지 못 한다.는 “교사불여졸성(巧詐不如拙誠)”은 한비자(韓非子)의 말이다.
거짓이 나라와 사회를 휘젓고 선이 모독을 당하는 때일수록 우리들은 한비자의 어설픈 진실을 애써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의 삶에 진짜, 정말, 100% 등을 붙여야 통하는 사회라면 좋은 사회, 진정한 사회와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수필가 김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