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사회전체가 분열과 대립으로 치닫는 요즘, 파당(派黨)과 계층, 지역, 세대에 따라, 또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들의 대결과 갈등의 양상을 보이면서 불협화음을 연주한다. 이해와 연민으로 감싸인 방패는 내던져진지 오래다. 주장이라는 칼과 모함이라는 총만이 이들의 손에 들려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랑을 내보내고 받아드리는 창을 닫았으니 이들이 보는 세상은 암흑과 구름뿐이다. 대상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나 자신을 볼 수도 없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일이 곧 나를 부정하는 일이다. 이들이 치킨게임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요즘 서울 종합병원 정신과 의사가 암을 예방 할 여며는 정치뉴스를 보지 말라고 권한다고 한다. 정치뉴스를 보면 스트레스가 생겨 암을 걸린다는 말이다. TV에서 정치 뉴스가 나오면 시청자들은 금세 두 패로 갈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등산 동아리 멤버로 오름을 오를 때도 좌우편끼리며 걷는다. 중간은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좌 클릭도 필요하다.
그러나 성장 동력자체를 묶는 복지는 벼룩잡기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좌와 우는 균형이다. 그런데도 저마다 자신들의 관점과 이익에 따라 목청을 돋워, 사회전체가 낙찰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매장처럼 흥청거린다.
모든 욕구와 요구들이 칼끝이 무뎌질 때까지 불빛을 내고 있다. 그 와중에 중산층은 갈수록 힘을 잃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쓰러질 것만 같은 허약한 체질로 병들고 있다.
그러나 너무 두려워 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중산층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킹메이커(maker king)를 만드는 핵심 계층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동네 내과 의원 원장님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 할 수 있는 확실한 비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분은 60대 초반으로써 사회 초년병도 아니다. 이분의 말씀인즉 “어느 정당이든 중산층의 표심을 잡는 쪽이 이긴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어떤 정당도 극우, 극좌는 클릭하면서도 중산층을 잡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 헛 다리를 짚고 있다는 말이다. 국민을 1대99로 갈라 부자와 대기업을 두들긴다고 중산층의 수입이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부자 때리기로 중산층이 표가 나올 리가 없다는 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쏟아내는 복지 공약도 그 혜택이 대부분 저소득층에 집중되는 터이어서 중산층에 크게 어필 할 소재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아무도 중산층을 주목하지 않는 지금이야말로 정치권의 천호(天祜)의 기회라고 했다. 누구든 “중산층 복원”을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이룰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한다면 선거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했다. 동네의원을 드나드는 환자는 대게 중산층이다.
오랫동안 의원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환자와 교감 했을 터이니 거기서 얻은 결론이 중산층 표심을 대변한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수도 있다.
사실 어느 나라나 중산층의 표심이 선거향배를 좌우 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통계청의 정의하는 중산층은 ‘중위가구 소득의 50∼150%에 속하는 소득계층’을 말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중산층의 소득의 중간일 뿐 아니라 사회의 중심축으로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계층이다. 다만 워낙 숫자가 많다보니 계층으로서의 자각과 응집력이 떨어질 뿐이다. 그래서 이익단체처럼 의회 로비나 농민처럼 여이도에 돼지와 소를 몰고 가서 시위를 못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이 여론 주도세력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는 계층간의 갈등이 적고 국민적 의사결집이 쉬운 반면, 그렇지 못한 사회는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크고 국론이 쉽게 분열된다.
결국 한 사회가 갈등을 줄이고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저소득층을 끌어올려 중산층의 비중을 늘리고, 그들의 삶의 질을 총체적으로 향상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것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이고 집권을 위해 경쟁하는 대권정책의 풀어야 할 숙제다.
불행하게도 최근 우리나라의 중산층의 위상은 갈수록 위축되고 초라해 지고 있다. 1995년 75.3%에 달했던 중산층은 2010년 67.5%로 떨어 졌다. 당시 중산층의 소득증가율은 국민소득 증가율의 1.3배에 달했던 것이 2010년도까지 중산층의 평균 소득 증가율은 절반으로 추락했다는 통계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대선에 나오는 후보들이나 정당에서는 ‘중산층 복원’를 정책으로 제시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1%의 재벌과 부자로부터 세금을 거둬 저소득층에 퍼주는 로빈후두(robin hood)) 식 복지공약만 남발하고 있다. 중산층의 일자리 향상과 소득을 늘려 주겠다는 비전은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중산층 복원의 핵심은 역시 일자리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어야 중산층의 빈곤층 추락을 막고 저소득층의 중산층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소득층 때리기와 저소득층 퍼주기로는 작금의 사회적 갈등과 양극화 문제는 풀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중산층 키우기’란 전향적 목표 전환이 절실하다. 이번대선에는 ‘중산층 복원’을 위한 정책경쟁의 장(場)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수필가 김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