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걸 팔자(八字), 운(運)이라고 우리들은 말한다. 팔자와 운수는 역술학(易術學)이다. 역술가는 어떤 방식으로 제자를 양성하고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는지를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봤다.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요즘 역술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크게 두부류로 나누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신기(神氣)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다. 이 유형은 유전이다.
신기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후천적으로 별도 훈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사람을 보는 순간에 안다는 것이다.(자료에 따르면) 다른 한 부류는 후천적으로 역술에 필요한 방대한 이론을 섭렵하고, 수많은 실전경험을 겪으면서 노하우를 터득하는 경우이다.
후자의 경우를 연구한 논문(역술가의 교육방법)에 발표한 내용이다. 하루 10시간의 넘는 피나는 훈련 끝에 역술의 일가견을 이룬 운관(雲觀)역술인의 설명한 제자 양성방법은 이렇다.
우선 이론 수업은 1년 정도 걸린다. 1년 동안 제자는 여러 명 받지 않고 오직 1명만 받는다.
수업은 1주일에 1회이고, 1회당 시간은 2시간 반 정도라고 한다. 철저하게 맨투맨 교육인 것이다. 논문골자를 그대로 옮기면 ‘추명 명리 학 강의’ ‘핵심통변’ ‘핵심 종합 통변상’이라는 교재를 공부시킨다고 한다. 이론 공부과정에서 제자에게 강조하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풀어서 말한다면, 운이 안 좋을 때는 물러 설줄 알아서 자제하고, 운이 좋을 때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사는 것도 내 팔자이고, 결국 내가 안고 가야 할 모든 고통은 숙명이라는 이치를 알게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1년 정도 이론 수업을 마치면 제자로 하여금 무조건 간판을 걸고 개업을 하라고 권한다고 한다. 실전체험이야말로 최고의 교육이 된다는 설명이다.
개업을 하여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진땀을 흘리고 엉터리라고 망신을 당하면서 역술가는 내공이 증진된다는 것이다. ‘산속에서 10년을 역술공부를 하는 것보다 개업해서 1년 손님 받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설명이 역술가의 양성과정이라면 역술인들은 찾아오는 손님들을 상대로 눈치코치로 심리상태를 파악해서 슬픔과 괴로움을 달래주고 복채만 챙기는 수법일수 있다.(물론 모두는 아니며 내 개인 생각이지만)
이와 같은 역술인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의 경쟁에서 낙오 되었거나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불안과 노력은 세상을 지탱하는 원동력일 수도 있다. 지난해에 KAST 대학생 넷이 잇따라 자살을 했다. 이 자살한 학생들도 나의 개인적인 추상이지만 역술인을 찾아가 눈치코치 말로 위로와 격려의 위안을 받았다면 자살은 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삶은 수많은 시험, 수많은 경쟁으로 걸러지고, 걸러지면서 상위 계층으로 비상하는 게 우리들의 사바세계의 삶이다.
자살한 KAST 대학생들도 우리사회에서 잘 사라온 비교우위에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또다시 걸러지는 과정에서 떨어진 일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삶은 죽는 날까지 걱정이라는 말이 있다. 생명이 유지되는 한 항상 고독과 고통과 불안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는 과정과 그 뒤의 사회생활에서도 관문은 끝이 없다. 삶의 어느 단계에서도 낙오자는 나오고 그로 인해 그의 삶은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역술인을 찾고 기도를 드리고 종교 삶을 사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이런 문제를 풀 수는 없는 것일까?
빌 게이츠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인생이란 원래 공평하지 못하다. 그런 현실에 대해 불평할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드리라”고 빌 게이츠는 충고한다. 오래전 세상도 공평하지는 못했었다. 그땐 신분차이가 있었다. 그동안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했고, 인간의 지혜도 엄청나게 축적해서 인공위성정거장을 만드는 시대다. 그럼에도 왜 이
문제를 못 풀고 역술인을 찾고, 기도를 드리고, 행운을 빌고 하는 나약한 삶을 살아야 되는가?
18세기 영국경제학자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식량증가에 비해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재앙이 올 것으로 내다 봤다. 그의 예상만큼 인구가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인구증가로 범죄와 빈곤의 폭은 한층 높여진 것도 사실이다. 불어난 인구는 경쟁을 부추겼고, 여기에 탐욕은 더욱 왕성하게 기생 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하니 역술인이나 찾아다니면서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할까. 당연히 아니다. 거기에 맞서는 개인의 노력과 사회적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런 노력과 고민의 집합체가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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