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코골기
슬픈 코골기
  • 고훈식
  • 승인 201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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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남편이나 아내가 코를 곤다. 듣기만 해도 잠자는 모습이 썩 아름답지 못하다는 증거다. 매일 골았는가? 젊었을 적도 그렇게 코를 골았는가?  젊은 혈기로 일을 많이 하여 피곤하여 깊은 잠에 빠졌을 경우, 깊은 숨 쉬느라고 숨소리가 컸는지 몰라도 코를 그다지 심하게 골지는 않았다. 긍정적인 상황과 적극적인 수면 상태에서 고는 콧소리는 옆에서 듣기에도 그다지 거부감이 없다.

반복되는 리듬이 일정하고 어쩐지 활기차서 당연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이 넘치는 젊은 날은 깊은 수면 상태에서도 자기 방어나 제어를 잠재의식 속에서도 활용하기 때문에 유독 몸에 이상 징후가 있거나, 크게 마음이 상하지 않은 날은 꾸는 꿈도 능히 잠결을 도와주므로 대체적으로 육체나 정신이 건강한 상태인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술을 많이 마신 후 잠을 자면 거의 코를 곤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다. 원칙적으로 코를 고는 것은 몸이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무인도 백사장에서 피우는 구조신호의 연기인 것이다. 여기서 시달림이란 스트레스를 말하는 거다.

술 마시는 날이 반복되고 세월에 체력도 점점 약해지면 그 비례로 코골기는 커지고 길어진다고 보는 편이 어법 상 맞아떨어진다. 그러니까 코를 골고 싶으면 술을 많이 마시라고 권해야 옳은가! 부부싸움을 하면 코를 더 골까? 부부싸움을 자주하고 크게 하면 남편 코나 아내 코가 더불어 소리도 크고 힘차게 많이 골 것이다. 왜? 부부의 말다툼이나 새간 부수는 행위가 오고간 상황이 정신적이나 육체적, 사회적으로 자신에게 시달림을 주고 있음이 명백하니까 하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젊은 날은 아내나 남편이 그다지 불쌍하지가 않았다. 젊음이라는 신기루 같은 부동산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아내가 섹시했고, 남편이 늠름해서 서로 통하는 만큼 나체로 만난 밤에 자는 잠이 당연히 깊었어도 코골기는 덩달아 그만큼 혈기왕성하여 듣기도 좋았다.

50대가 지나면서 남편인 나도 실직을 했고 남편인 남들도 많이 실직을 당했다. 연금을 사업실패로 날렸거나 친족의 빚보증으로 오히려 빚쟁이로 전락했을 경우 나의 아내나 그대들의 아내들도 직업전선으로 내몰린다.

처녀 시절엔 바퀴벌레가 무섭고 신혼시절은 쥐마저 무서웠던 꽃다운 미인들이 막강한 중년 여인이 되면서 뱀도 아니 무섭고 밤길도 아니 무서워진다.

어쩌다가 억울한 일이 생기면 우렁차게 고함을 칠 만큼 기백이 넘치게 되고, 당연히 멋지고 여유가 넘치는 노후를 예비하여 온천장에서 혈액순환을 도와서 피부를 보호하고, 문화 센터에서 자기개발을 위한 시간을 투자해야 마땅함에도 중후한 여자로서 평생 지녀야할 위엄도 깡그리 반납하고 등 오그린 여자가 되어 썩 좋지 않은 상태로 늙고는 당연히 보수나 근무 조건이 나쁜 공장이나 식당에서 일을 해야 하는 신세의 코골기는 과연 어떨 것인가.

근심으로 잠 못 이루는 밤에 토하는 한숨도 사실은 뜬 눈의 코골기인 것이다. 가난이 만리장성인데다가 피로에 휩싸여 자는 잠은 잠 못 이루는 밤의 한 숨인 것이다. 어느 시인의 혜안처럼 나무줄기는 허공에 내린 뿌리라는 것이다.

사람은 부아가 치밀면 열 받게 되어 있다. 열 받으면 체력 소모가 증가하게 마련이다. 늙을수록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체력소모 또한 더 하다. 중고차가 기름을 더 많이 먹듯이. 그래서 아닌 밤중에 늑대 울부짖듯이 코고는 역사는 시작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많다. 그 중에서 ‘두려움’ ‘억울함’ ‘어리석음’도 나쁜 방향으로 코고는데 한몫을 톡톡히 한다고 말하고 싶다.

두려움이 증가하면 무서움으로, 무서움이 가증 되면 공포로 발전하는데 공포는 건설적인 자기방어기제가 아닌 것이다. 공포는 슬픔의 심연이다. 그래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잠이나 슬픈 잠도 코골기가 심각한 것이다.

이쯤에서 간과하기 쉬운데 억울한 아내의 독기 어린 슬픈 잔소리가 지속적으로 고비 사막 한 줌의 먼지가 될 정도로 하염없으면 코고는 것만으로는 죄송스러움을 견딜 수 없어 치매로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

엊그제 신문 사설에 쓰인 문장처럼 ‘중년 아내여 복수심을 잊어다오.’라는 기사는 서로 화해와 소통을 위한 때늦은 제안일까.

잠옷 입고 곱게 자는 아내를 보면서 침을 삼키는 것은 조건반사이고, 코를 크게 골면서 자는 아내를 보면서 가만히 손을 잡는 것은 측은지심이다. 자신이 얼마나 아프게 코를 골았는지도 모르고 출근 준비하는 아내의 무표정이 사뭇 송구스럽기에 더 늦기 전에 술과 담배를 멀리 하고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제거해야만 한다.

그 뉘우침 덕분으로 이미 늙고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된 남편에게 다만 인간이기에 불쌍하다는 그대의 아내가 밤 새워 수발을 할 때 이 지상의 거룩한 여신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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