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다. 입동(立冬)이 지나 찬바람 소리가 휭휭 들린다. 숲길이나 들길에서 들리던 작은 생명들도 그 자취를 감추고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중국 시경 “빈풍”에 나오는 계절을 보면 오월에는 여치가 다리로 날개를 부딪치며 운다고 했다 유월에는 베짱이가 날개를 떨며 팔월에는 매미가 천지를 울린다. 귀뜨라미는 칠월에는 들판에 구월에는 문밑에 있다가 시월에는 침상에 들어온다. 밤새 문설주와 문짝 사이에 너펄 거리는 문풍지 소리를 듣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문풍지 소리에 둔감한다. 그러나 문풍지 소재로 時 한수쯤 짖지 않은 옛 시인이 없을만큼 그대신 귀뚜라미가 시를 쓴다. 오등나무 잎하나 떨어져 천하에 가을을 알리듯 귀뚜라미도 노래를 멈추면 겨울이 닥아온다. 우거진 나무 그늘과 꽃다운 풀등 계절이 추이를 아주 잘 표현하다니 참으로 놀랍다. 우리들은 옛적에 삼간초가 침상에서 풀벌레 소리를 드를때는 지나간 추억의 너무나 그립다. 그러나 지금은 아파트 생활이 일반화된 요즘 기대하기가 어렵다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 와서 울어줄 귀뚜라미는 없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건축물에 창틀은 성능이 너무 좋다 방풍과 방음이 잘되어서 바람소리 빗 소리 조차도 들리지 않는데 하물며 풀벌레 소리는 말도 안된다. 우리 선조들은 귀뚜라미에 유식하게 하면 실솔(??)의 소리에 정한을 담아 애틋한 사랑이 마음을 옮기기도 했다 깊어가는 가을에 노래를 잘 부르는 귀뚜라미도 지금은 섬돌 속에 꼭꼭 숨어있다. 스잔한 바람은 숲속의 나무역시 외면하고있다. 풀잎도 시름시름 시들어 그 품속에 의지하기 에는 대지는 차겁다 가을 어느날 귀뚜라미는 시든 풀섶에 몸을 웅크린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그 숲속에 갔을때는 귀뚜라미는 죽어 있었다. 시인 류 시화 께서는 귀뚜라미를 주제로 쓴 시가 있다. 이시를 전문에 옮겨본다. 내가사는집 / 근처의 눈속에는 / 참 많은 귀뚜라미 들이 살고 있어 / 밤이 넘도록 내집 빈곤을 채우며 / 글쎄, 글쎄, 글쎄, 하고 웁니다. / 어떤때 그 울음 소린는 / 낮은 자리에 누워 있는 내귀에 / 슬퍼, 슬퍼, 슬퍼 하듯들립니다. / 내집의 귀뚜라미 들은 모두 / 눈속에 살기 때문 입니다./ 류시화 의 시는 악보 없는 음악이다. 가을에는 벌레만도 아니다. 밤에 우는 소리는 뭐니뭐니 해도 소쩍새 소리가 정말 아름답다. 옛날 선조 들은 왜 밤에 소쩍새 울음 소리를 듣고 잠을 못 이루었는지 이해가 된다. 소쩍새는 사람이 가까운 야산에서 어김없이 울어주는 참으로 고마운 새다 한 마리 또는 한 두 마리가 화답하면 하루 동안 격해 있던 마음도 겸허 해지고 애틋한 기분에 휩싸인다. 섬돌 밑에 귀뚜라미가 울고 있다면 산새 역시 고요한 소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도 듣기 좋은 소리가 있다. 나무 스치는 바람소리 시냇물 소리 산새 우는 소리 풀벌레 소리 학 울음소리 섬돌 위에 비 떨어지는 소리 눈내리는 소리 는 모두 자연의 하모니다 뿐만 아니다. 바둑돌 놓는 소리 찻물 끓으는 소리 글 읽는 소리 이 모두가 맑고 맑은 향기다 계절에 따라 어디로 가든 아름다운 소리는 들을수 있지만 귀뚜라미는 소리를 들을수 없다 깊어가는 가을에 귀뚜라미는 모두 죽어 있었다. 그렇지만 내년을 기약하면서 또다시 잉태한 새끼들은 아름다운 소리로 다시 합창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