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의 유통기한
괴로움의 유통기한
  • 김찬집
  • 승인 2011.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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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 여류소설가의 인터뷰내용이 여성 잡지에 게재된 내용이다. 주고받는 문답이 마음에 와 닿았다. “사람의 괴로움에 유통기한이 있을까요?”패널(panel)의 질문이다. 그러자 소설가의 대답은 “음…… 어떤 괴로움은 유통기한이 없지 않을까요?”패널은 “괴로움은 시간과 더불어 사라짐으로 유통기한이 있다”고 주장했고, 소설가는 “괴로움 소멸이 회복이라면, 완전한 회복을 할 수 없는 괴로움은 너무나도 많다고 되 반론을 하면서 두 사람은 일합일리(一合一離) 하다가  결론 없이 마무리 되었다.
이 글을 무척 흥미롭게 읽으면서 작가의 주장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삶에는 치유가 되는 괴로움이 있고 치유가 안 되는 괴로움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치유가 안 되는 괴로움은 자식의 주검 같은 괴로움이다.  불교의 묘법연화경에 전해지는 내용이다. 자식의 주검을 안고서 한 여인의 절규 하면서“부처님”이 아이를 살려 주십시오. 애원하자 부처님은 이 여인에게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을 찾아서 겨자씨 세 개를 얻어오너라, 그러면 너의 소원은 이뤄질 것이다.”이 여인은 자신의 할 수 있는 세상천지를 다 뒤져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중에 사람이 죽지 않았던 집을 찾지 못했고,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부처님이 지혜를 깨닫게 되었다는 법어다.
그러나 자신 이런 일이 닥칠 때는 그 이치를 깨닫지도 못하고 유통기한도 없는 것이 사바세계의 범인들이 삶이다. 그래서 자식의 죽음은 가슴에 묻는다는 속담이 전해지고 있다. 물론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슈킨의 시에도 삶의 모든 괴로움은 유통기한이 있다는 노래가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우울한 날들을 견디 며는 지나가리니,/기쁨의 날은 오고/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현재는 슬픈 것/모든 것은 일순간에 지나가는 것이니……”
우리들의 삶에 모든 괴롭고 슬픈 것들은 다 유통기한이 있다는 푸슈킨의 시심이다. 그러나 자신의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는 유통기한 없는 괴로움은 분명 있다. 이 케이스를 제외하면 세상 만물은 다변한다. 변한다는 것이 유통기한(有效壽命 service life)이다.
과일, 체소, 고기, 등 모든 상품은 적정 유통기한이 있다. 음식만 유통기한이 있는 게 아니다. 각종 증명서나 자격증 등 서류에도 유통기한이 있고, 각종계약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또한 직장에서도 정년퇴임이라는 유통기한이 있다. 음식물의 유통기한을 늘리려면 얼음을 넣거나 소금에 절여야 하듯 직장의 유통기한을 늘리려면 부단한 자기스펙을 높여야 한다.
사람도 유통기한이 있다. 유통기한이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기에 요즘은 웰빙 생활이라고 해서 자기 유통관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부부(夫婦)간에도 유통기한은 있다. 그렇게 뜨겁고 열정적일 것 같던 사랑도 결혼하고 나면 시들시들해지는 것도 유통기한만료 때문이다. 신혼 때는 섹스도 정열적으로 자주 하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섹스도 시들해진다. 농담 삼아 어찌 가족과 섹스를 하겠냐고도 한다. 맞다. 남녀가 만나 결혼하면 연인에서 가족이 되어버리는 게 현실이다. 왜냐고? 결혼한 부부들은 돈이나 집, 자녀 교육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둔다. 부부 사이 문제는 관심 순위에서 하위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더 이상 아내가 여자가 아니고, 남편이 남자가 아니고, 그냥 가족일 뿐이다. 그렇지만 서로 더 노력하고 애쓸 때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게 부부간에 사랑이다. 즉, 사랑은 노력의 산물이다.
이런 영국 속담이 있다.  "하루만 행복하려면 이발을 해라. 일주일 동안 행복 하고 싶거든 코디를 해라.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한 해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새집을 지어라. 그러나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정직하여라.(Do you want to be happy day for a haircut. ....... But who wants an honest life shall be happy)" 이는 행복의 유통기한을 늘리는 방법이다.
결혼주례사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말이 “영원히 사랑하라!”는 말이다. 기독교에선 “하늘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라!”고 한다. 결혼하는 두 사람의 유통기한을 말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 유통기한을 다 채우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결혼만 했다고 해서 유통기한이 끝나는 날까지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음식물의 유효기간도 냉장고 보관 등 보관방법을 잘 지켜야 유통기한을 채울 수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에도 애정의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갈등이나 권태란 바이러스의 침투로 유통기한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이혼하고 만다.  부부의 유통기한을 늘리려면 계속적인 관심을 같고 사랑을 표현해야한다. 이와 병행하여 유통기한의 없는 괴로움은 내 마음에 고통을 놓아 버리지 싶지 않은 고집 같은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가슴 속에 묻은 이 괴로움은 가을이가고, 겨울이 왔는데도 내 마음은 “낙엽 지는 가을”을 계속 움켜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반성하며 마음을  추스르고 싶은 겨울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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