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그 후........
1년 그 후........
  • 성준호
  • 승인 201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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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 전, 전 타격대장의 강력한 권유로 언론기고를 썼었다. 그 땐 풋내기에 불과했지만 어느새 전역할 날을 바라보고 있다. 1년 전 경찰서에서 부대 내 막내였던 내가 지금은 2석이 되어 다시 언론기고를 쓰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다.
  언론기고를 쓰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난 우도로 발령을 받았다. 간혹 다른 대원들의 발령을 보긴 했었지만 내게 갑작스레 찾아온 발령은 만만치 않게 당혹감을 주었다. 반년 동안을 머물러 있던 자리에서, 내 동기이자 초등학교 동창친구를 비롯해 함께 지내온 대원들 곁을 떠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단 하루 만에 이루어진 일이라 신속히 발령에 당하여 피할 수 없는 일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도초소에 도착해 있었다.
  우도란 섬이름은 들어만 봤지 실제로 가본 적이 없는지라 쭉 늘어선 건물들과 인도 옆에 커다란 도로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던 경찰서에서와는 사뭇 다른 경관이 펼쳐져있었다. 우선은 태평양의 커다란 바다와 인도와 차도가 페인트 선 하나로 구분된 길, 가는 곳곳 길가의 돌담들, 돌담으로 나뉘어져 있는 밭들이 있고, 특히 거센 해풍이 불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도에서 적응하기가 절대 불가할 줄 알았지만 오늘이 지나면 항상 내일의 태양은 떴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한 달, 두 달 그리고 지금이 되었다.
  물론 여기 우도는 예나 지금이나 정말 할 게 없다. 그리고 바닷가 옆이라 바람이 거세게 불고, 바람에 섞인 염분들이 모든 것을 녹슬게 하고 더 빠르게 풍화시켰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소소한 재미는 있었다.
  첫 번째가 바로 요리이다. 우도초소에서는 따로 취사병이 없고 대원들 자체로 마트에서 구입한 식자재들로 취사하는 식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요리를 배우는 것은 불가피했다. 처음엔 정말 무서웠다. 과연 자신이 만든 요리로 다른 사람들에게 먹일 수 있을지, 온전한 요리는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처음이 어렵고 그 다음은 술술 풀어나가기 마련이다. 칼에 손가락이 베이고, 간을 보다가 뜨거운 국에 혀를 데이고, 재료를 씻고 설거지하다가 주부습진에도 걸리면서 어느새 어엿한 우도의 주방장이 되어 있었다. 요리법을 찾아서 먹고 싶은 것을 척하니 요리하고, 평소 알고 있던 요리법을 응용해서 새로운 요리도 창조해냈다. 그러면서 미래에 한 가정의 주방장을 꿈꾸며 여러 요리를 시도해보는 영광을 누렸다.
  또 여기서 내가 자주 즐기는 것은 산책이다. 난 고등학생이 되면서 단거리 산책을 자주 즐겼는데, 여기 우도에서는 초소장에게 보고 후 허락을 받고 우도 안을 다니며 운동을 하거나 우도경관을 관광할 수 있다. 그래서 난 혼자 다니기엔 심심해서 초소 내에서 키우는 강아지 한 마리를 대동하여 우도 이곳저곳을 산책한다. 그러면서 관광객들의 눈을 끌지만 아름다운 우도의 경관을 보며 걷노라면 별 신경 쓰지 않고 산책을 즐기게 된다.
  이외에도 생활하는 데 부족한 것이 있을 때면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거나 현재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내면서, 전보다 나은 융통성을 기르는 것 같아 거의 반야생(?) 생활 속에서의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이 우도에서 적적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주어진 기회만큼 난 차지하지 못한 것 같다.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기계발에 힘을 덜 쓴 것 같다. 전역까지 4개월이란 기간이 남았지만 이 우도에 있는 동안의 시간이 후회되지 않도록, 그리고 전역과 동시에 찾아오는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날려버릴 정도로 나 자신을 갈고 닦아야겠다.
  마지막으로 우도초소대원들의 생활이 더 윤택해질 수 있도록 힘써주시는 두 초소장님들과 우도의 거센 바람을 맞으며 함께 버텨주고, 우도의 하루가 전혀 외롭지 않게 해주는 동료대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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