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도가니
  • 김찬집
  • 승인 201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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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가니’가 불러온 사회적 파장은 천파만파다. 지난달 22일 개봉된 ‘도가니’는 2000년대 초반 광주의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발생한 교직원과 교장의 자행한 집단 성폭행사건을 다룬 공지영씨 소설을 소재로 제작한 영화다.
나도 이 소설을 2009년도에 읽었다. 이 소설에는 광주광역시를 무진시(霧津市)로 무대를 바꾸었다. 중앙 한 일간지 1면에 “그들의 소리 없는  울부짖음, 사회는 외면했다.”는 타이틀로 돈 있고 고학력자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악랄한 시태를 고발하는 기사를 실렸다.
다른 중앙일간 유력지는 영화‘도가니’의 소재가 된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아동 성폭행 사건 재판당시 공판에 관여 했던 여검사가 법정에서 느꼈던 분노와 실망을 기록한 일기와 현재의 심정을 담은 글을 검찰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이 올린 글 전문을 신문에 게시 했다.
지금 ‘도가니’ 영화로  좀 심하게 말하면 전국의 열광(熱狂)의 도가니가 되고 있다. 도가니라는 말을 사전적 의미를 빌리면 물질을 융해 또는 가열하기 위해 사용되는 내열성 용기다.
 쉽게 말하면 과거 30∼40년 전 우리 농경사회에서 집안경조사시에 집안 뜰에서 고기 등을 삶는 가마솥을 말 한다. 다시 설명을 붙인다면 기득권 세력들이 사회의 낙오자. 어두운 곳, 그늘진 곳에 사는 외로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가마솥에 놓고 열을 가하면서도 조금도 양심에 부담 없이 기득권세력끼리 상부상조로 유희(遊回)한다는 의미다. 기득권 힘들끼리 상부상조는 명문학교동문, 같은 종교의 신도들이 자동적으로 지역선거를 장악하고 지배구조가 형성된다는 말이다. 
‘도가니’ 같은 실화 소설을 영미 권에서는 팩션(faction)이라고 한다. 1965년 미국의 작가 트루먼 카포트의 ‘냉혈’을 현대 팩션 문학의 시조로 꼽는다. ‘도가니’는 팩션 문학이면서도 저널리즘이기도하다. 그렇다면 공지영 작가는  소설가인 동시에 저널리스트이다. 왜냐하면 사회의 어두운 곳을 파헤쳐 사회에 맑은 힘을 보태었기 때문이다.
‘도가니’영화를 본 한 여자 지인의 말이다. 영화를 본 후 수십 년 전 학창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반에서 늘 1등을 하던 똑똑한 급우가 교사에게 성폭행 당한 후 방황하던 끝에 결국은 가출해서 유흥업소에 여인의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교사는 나중에 장학사가 되고 대통령표창까지 받으며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단다. 섹스의  양과 질조차 부의 소유와 기득권에 비례한다면 이건 사회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눈감고 있는 사이에 필연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깊이 감춰진다. 겉으로 드러난 불행은 개인 탓일 뿐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고학력, 고소득, 지방도시의 리더(有志)라는 자들의 유회(遊回)는 하는 곳은 비단 공지영작가의 ‘도가니’뿐만이 아니다.  슬픔과 한숨과 외로움이 있는 곳에는 다른‘도가니’들이 있어도 모르고 있고, 모르는 체 하고 있을 뿐이다. 요즘 한 창 이슈가 되고 있는 저축은행 비리가 그렇고 지방도시의 인사 비리가 그렇고, 정치권의 권력비리가 그렇다. 모두가 약자를 밟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데서 ‘도가니’는 탄생되는 것이다.
내가 ‘도가니’를 읽은 감정을 압축한다면 ‘도가니’와 무진시(霧津市)는  안개로(기득권세력의 위선) 뒤덮인 약육강식(弱肉强食)삶의 축소판이다. 이 완강한 시스템은 온갖 거짓과 협잡과 폭력이라는 안개(僞善)를 동원해 치부를 감추고 진실을 질식시키면서도 떵떵거리면서 산다. 우리들은 누구나 말할 수 있다. 거짓과 싸워야 한다고, 진실은 영원히 은폐할 수 없다고, 길을 잃어도 희망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또 누구든지 폭력과 위선 앞에 분노하고 통한의 눈물은 흘릴 수는 있다고, 하지만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 온힘을 다해 무서운 폭력과 거짓이 세워 놓은 안개 감옥으로 뛰어들어 죽어가는 진실을 구해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 편집후기다.  “미화된 언어로 진주를 꿴 듯 아름답게 포장된 ‘말’처럼 가증스러운 것은 없다. 진정한 시에는 가식이 없고, 거짓 구원도 없다. 무지갯빛 눈물도 없다. 진정한 시는 이 세상에 모래사막과 진 흙창이 있다는 것을 안다. 왁스를 칠한 마루와 헝클어진 머리와 거친 손이 있는 것을 안다. 뻔뻔스러운 희생자도 있고, 불행한 영웅도 있으며 훌륭한 바보도 있다는 것을 안다. 강아지도 여려 종류가 있으며, 걸레도 있으며,
들에 핀 꽃도 있고, 무덤위에 피는 꽃도 있다는 것을 안다. 삶속에는 시가 있다“ 
우리가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믿어 온 모든 것들이 파괴되어 가는 이 시대에 우리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유지 할 수 있는 가치를 지켜내야 할 것인가는 나만의 느끼는 일시적인 분노가 아닐 것이다,  ‘도가니’를 읽은 모든 이들의 공통된 분노의 절규를 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아무리 교묘한 거짓말도 어슬픈진실에 미치지 못한다.(巧詐不如拙誠)”는 한비자(韓非子)의 말이있다. 우리는 한비자의 어설픈 진실을 애써 지켜내지 않으면 제2 제3의 ‘도가니’가 우리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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