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 박 정권 시절 공식적으로 민주적 양심선언을 했던 故지 학순 주교(원주 교구장) 께서 긴급 위반조치로 교도소에 가기도 한 인물입니다. 평남 출신인 그는 1985년 9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차 북한을 방문했지요, 35년 만에 만난 누이의 손을 잡고 북에서 고생이 많구나 가지고 간 선물을 주자 "오빠, 천국이 어디 있어요, 여기가 지상 천국이지요” 헤어질 때 누이를 부둥켜안고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달님에 안부를 전하자 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쩌면 주교의 눈물은 혈육과 헤어짐은 남북 단절과 누이 그 모습이 그의 가슴을 때리기 충분 했을 것입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거 추기경이 된 故김 수환 추기경께서는 2009년 선종하기 까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 많은 기도를 올리신 분입니다. 선종하기 몇 년 전 성탄일 3일을 앞두고 추기경께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편으로는 국가의 위난과 위정자들의 국민을 탄압 하거나 이웃과 이웃이 갈등과 고통을 보면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보며 모든 것이 내 탓이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 뿐만도 아닙니다. 선교 정신과 혈육이정을 위해 안타까워했고 전 서울대 황 모 교수께서 연구 성과가 고의적 조작으로 평가되자 고개를 들 수 없다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군사 정권시절 국민들은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민주는 감옥에 갇혀있고 자유는 허수아비며 인권은 진흙 속에 갈갈이 뭉개져 있었습니다. 그런 고비마다 경께서는 억압과 고통을 받고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강경한 정책에 대해서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문명이 정치를 바로 세우도록 했습니다. 일부 대학생과 좌파 단체의 과격한 시위는 융화의 경계를 넘는 선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시위를 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에게 욕먹는 시위는 안 된다. 학생이 스승을 구타하고 학교 기물을 때려 부수는 행위는 아무런 이유가 있는 시위라도 그것은 찬성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명동 성당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할 때는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유를 호흡하며 살고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한편에서 귀중한 자유를 낭비 하면서 방종하고 생활면에서 근검 절약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 그늘진 곳에 관심도 희박하지 않는지 우리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역사의 고비마다 우리들의 중심에 우뚝 선 나라의 어르신 이였습니다. 명동성당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 강정마을 해군 기지를 놓고 찬성과 반대가 공존하고 있지요, 반대쪽 인사들이 허리에 쇠사슬을 칭칭 묶고 “평화의 섬에 왠 군사기지냐” 결사 반대쪽에는 우뚝 선 대장님이 있습니다. 육지에서 건너오신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 앞장서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진보 리더들이 들썩이는 방석에 앉아 뙤리를 틀고 있지만 신부님 이 그늘진 다른 곳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이제 짐을 싸고 묻밭으로 나가십시오. 가난한자 불행한 사람 그리고 신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난과 정결 순종의 3대 서원이 생각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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