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의 사랑, 그 갈증
지상에서의 사랑, 그 갈증
  • 공옥자
  • 승인 201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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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열정을 다해 노랠 부르는 칠순의 친구에게 물었다.
“얘, 너 잠자리에서도 그런 표정으로 남자를 안았었니?”
“하하, 내 남자는 너무도 정확해서 낭만이 없었어.”
 정확했다니 무얼 말인가. 모두 배꼽을 쥐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그만이라고 믿는 남편 곁에서 정말 재미없는 인생을 살았노라고, 그래서 이렇게 노래로나마 한을 푸는 거라고, 진지한 얼굴로 토로하는 그녀는 자식들 잘 키우고 유복하여 부러울 것 없는 노년을 누리고 있지만 가슴에 못 다한 사랑  아주 작은 시내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메디슨 카운티다리』라는 소설과 영화가 한때 선풍적 인기를 몰고 왔다. 여인은 묵묵히 가정을 지켰지만 뜨거웠던 사랑, 표범처럼 날렵한 남자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런 사랑 한번 해 보고 싶은 여자들의 소원이 들끓는 듯했다.
 인간의 역사에는 사랑에 올인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친다.  일세를 쥐락펴락하던 남정네의 사랑이야기에 흥미가 더 가는 이유는 내가 여자인 까닭일 터.
 크레오파트라를 사랑한 안토니우스는 그녀의 정략적 희생자였을지라도 그 진정성 때문에 심금을 울린다. 당의 현종은 양귀비를 자결하게 해놓고도 임종의 자리에서 그녀가 있어서 인생이 행복했다고 말했다는데 (사실인지, 안내원의 말인지 아리송하지만) 듣는 순간 감동이 왔다. 여인으로 해서 한 남자의 삶이 행복 했다면 그 또한 작은 보람이 아닐 것이다.
 세기의 난봉꾼이라 부르는 카사노바, 여성 편력이 많았음에도 그 때마다 한 여자에게  최선의 자세로 헌신했다는 기록 때문에 매력을 느낀다. 평생 한 여자도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남자들도 많은 데 여러 명의 여자를 흡족하게 사랑할 수 있었다니 대단한 능력이다. 그 남자의 사랑이 어떠했을지 궁금해지는 것은 내 숨겨진 바람기 탓.
 지긋한 나이에도 마누라만 속일 수 있다면 절절한 연애 한번하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놓는 남자, 남편만 아니면 설레는 사랑 누가 말리겠냐는 여자, 사랑 이야기는 항상 흥미가 동한다. 혼자 청청하게 살고 있는 선배조차 제대로 사랑도 못하고 늙어가노라고 탄식을 했다. 대체 사랑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채워지지 않은 목마름을 품고 살까.  열정적 사랑이 인생의 회한으로 남는다면 지상에서의 사랑은 삶의 로망인가.
 아무리 눈멀어 시작한 사랑도  갈등과 비난이 오가면 서로를 이끌던 흡인력은 증발한다. 비난을 듣자고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지만 기대는 무너지고 결점만 들어날 때 누구나 쉽게 상대를  폄하하게 되고, 비난은 치명적인 독이 되어 둘 사이에 피어나던 꽃들은 자취를 감춘다.  완벽하게 상대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지상에서 완벽한 사랑은 애초에 무리한 욕구라는 걸 터득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사랑이 메말라 시들어버리면 슬며시 일탈의 바람이 일고 인생의 드라마는 불륜과 부정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어쩌랴, 가슴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는 생의 실체가 아닌 것을, 낭만적 사랑이란 문학이나 예술이  현란한 이미지로 주입 한 허상인 것을.
 <사랑은 중노동>이라 고 말한 시의(詩意)는 선택의 무거움뿐 아니라 법도를 어긴 사랑의 질곡까지를 함의 했을 것이다.  해서, 많은 사람들은 중심을 잃지 않고
 <이걸 알게 되기까지 오래 고통스러웠지>라고 달관 하듯 노래한 시인처럼 묵묵히 살아 내고 있을 것이다.

친구에게서 메일이 왔다.
“난 줄리엣이 아니라서 슬펐단다.”
답을 보냈다.
“ 줄리엣이었니? 난 늘 황진이었는걸.”
줄리엣에 황진이라, 비극적 여 주인공을 동경했던 두 친구는 아직도 철들지 않은 소녀일 밖에…….
 황진이는 내 청춘의 선망이었다. 가무에 출중하고 시예에 능했던 그녀, 뭇 남성이 품어보고 싶어 한 여인. 허나 그녀라고 한 지아비와 조용히 살고자한 꿈이 없었으랴. 정처 없는 뜨내기 사랑, 원치 않은 남정네들의 시달림에 홀로 서러웠으리라.
 그러하니 곁에, 긴긴날 다투며 상처 내며 견뎌온 짝을 새삼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적막하만 이 지상에서는 달리 길이 없어 보인다.
  하여,  신은 도저히 채우기 어려운 인간의 사랑에서, 눈을 들어 당신을 찾도록 타는 갈증을 심어 두신 걸까.

        * 인용 문구는 문정희와 양애경씨의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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