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위 ‘무명천 할머니’라 불리우는 진아영 할머니(1914-2004)는 1949년 1월 12일 경찰의 총격으로 턱 부분에 총상을 입고 아래턱이 소실되었다. 무영천에 턱에 두르고 살면서 소화 불량과 관절염으로 일생을 고생하였다. 말을 할 수도 없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55년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 죽만 먹으면서 연명하며 쓸쓸하게 삶을 살아 온 그가 90세가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그런 진아영 할머니를 기리기 위한 문화제가 지난 8일 열렸다. 월령리 마을회와 주민자치연대 볼런티어센터,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노래모임 모다정이 주관하였다. 문화제가 열린 그의 처소는 그가 숨지기 전 30여년 동안 살아온 삶터다.
제주4·3은 당시 난리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심한 후유증을 남겼다. 제주4·3을 화해와 상 생, 평화와 인권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라도 ‘기억’해야 한다고 하지만 기억 자체가 아픔이자 고통스런 이들이 있다. 바로 제주4·3 후유장애인들이다.
제주4·3특별법에는 후유장애가 남아있는 자를 ‘제주4·3사건 희생자’로 규정하고 있다. 제주4·3 인명피해의 규모로 보아 후유장애인도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부상자들은 지난 60여년의 세월 속에 고통을 받다가 죽어갔다.
그리고 제주도4·3피해조사보고서에는 182명의 부상자가 조사되었으며, 특별법에 따라 희생자로 선정된 후유장애자는 현재까지 113명이다. 이들 중 후유장애인에 대한 조사는 대부분 외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정신적 후유증에 대해서는 접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제주4·3후유장애인협회는 지난 2004년 4월 23일 창립되었다. 그 동안 ‘제주4·3후유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른 자료집’을 발간하고, 전국4·3유적지 순례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한마디로 제주4·3당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받고 그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하나로 뭉쳐 불편한 몸을 이끌고 형제처럼 의지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제주도의회는 지난 8월 ‘제주4·3사건 생존 희생자 및 유족 생활보조비 지원조례’를 제정하였다. 이에 따라 9월부터 후유장애인과 수형자, 고령 유족에게 9월부터 생활보조비가 지원된다. ‘생존 희생자’는 4·3사건 당시 부상을 당해 장애가 있거나 수형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생활보조비 지급 대상은 총리실 산하 제주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가 희생자 및 유족으로 결정한 사람 가운데 현재 국내에 주민등록을 두고 살고 있는 생존 희생자 139명과 80살 이상인 1세대 유족 1715명이다. 월 지원액은 후유장애인과 수형자는 8만원, 유족은 3만원이다.
조례 제정이 있기까지 제주4·3후유장애인협장 김철 할아버지는 애를 썼다. 도의원들을 열심히 만나고, 설득하는데 온힘을 쏟았다. 그는 1948년 7월 14일 군 토벌대의 손에 양쪽 팔의 관절 부위가 관통 되고, 옆구리는 총알이 스쳐갔다. 지금 왼쪽 팔은 그나마 사용할 수 있지만 오른쪽은 아예 오그리거나 펴지를 못하는 상태이다. 당시 삼양마을에 군인들이 들어와서 무차별적으로 학살을 시작하였고, 작은 아버지 등에 업혔던 그는 양쪽 팔의 관절 부위에 총상을 입고, 지금까지 후유장애자로 살아가고 있다.
제주의 피바람 부는 광풍의 역사, 4·3을 말하지 못하던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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