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있는 자본주의’
‘책임 있는 자본주의’
  • 김 관 후
  • 승인 201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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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있는 자본주의’가 화두(話頭)다. 자본주의 진화단계에 따라 숫자로 이름도 붙였다. 신자유주의가 심각한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의 그늘을 드리우면서, 탐욕과 과다를 다스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뜻에서 새로 등장했다. 이를 ‘자본주의 4.0’이라 부른다.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가 ‘자본주의 1.0’이고,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케인스가 내세운 ‘수정자본주의가 2.0’이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정부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 3.0’이다
경제평론가 칼레츠키(Kaletsky)는 그의 저서 『자본주의 4.0』에서 서구자본주의의 진화 과정을 네 단계로 설명하면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4.0’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약 40년을 주기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서 위기는 기회라는 주장이다.
‘책임 있는 자본주의’는 정부와 시장이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 주체적으로 풀어 나가야 할 문제가 아니다. 기업인들이 자발적으로 기부와 자선사업을 권장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그러니까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따뜻한 자본주의’에 브레이크를 걸기시작하면서 정부의 역할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책임 있는 자본주의’가 논의되면서 ‘사회적 기업’도 조목 받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사회적 기업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놀라운 성과라고 말했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사회적 기업은 새로운 비즈니스 성공모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옥스퍼드 스콜포럼은 경제 권력이 시민사회로 이동하고 있고, 사회적 기업이 주류에 들어설 때가 됐다고 선언했다. 사회적 기업에 미래학자들의 시선도 모아지고 있다.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파는 기업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한국자본주의는 어떤가? 한국자본주의 4.0에 필요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화와 타협, '사랑 나눔'의 사회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최근의 복지 담론이 소모적 정쟁을 넘어 한국자본주의의 새 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인이 자본주의 4.0을 만들어가는 선봉장이 돼야 한다. 대그룹 오너들은 좀 더 선제적인 대응을 하면서 사회를 이끌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부가 앞장서서 시장과 더불어 양자가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좀 더 적극적인 사회 공헌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무한경쟁에서 탈락한 패자가 우리 사회 불안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정규직·중소기업·빈민 등 각 분야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소수의 승자에게 과실이 독점돼온,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 방식도 큰 마찰음을 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나갈 것인가. 성장은 하는데 부(富)가 일부 계층에 집중되고 다수 대중은 빈곤해지는 '빈곤화 성장' 때문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기존의 시장원리로만은 해결하지 못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본주의 4.0' 시대로 가야 한다면 대기업과 정치권의 관계부터 4.0 시대를 열어야 한다. 대기업과 정치권은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있다. 정치권은 대기업과 맞서기 위해 스크럼을 짰다. 자본주의 4.0 시대의 핵심은 대기업이 나눔과 배려,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 대기업은 아직도 시대가 변한 줄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기업과 정치권의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다. 대기업은 밉든 곱든 정치권의 뒤엔 국민이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서민과 소비자가 진짜 성나면 대기업의 힘은 하루아침에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

소설가 김 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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