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특별자치도가 발행하는 ‘다이내믹 제주’ 제499호 표지에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를 실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두 손 모아 눈을 감은 소녀들의 사진도 보인다. 나는 집으로 배달되는 ‘다이내믹 제주’가 영 불편하여 제주도청으로 전화를 건 적이 있다. 집으로 배달되는 것을 사양한다는 내용으로 담당자를 설득하였다. 그런데 계속 배달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번에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제주도가 저지르고 말았다. 왜 하필이면 모윤숙의 시인가?
모윤숙이 누구인가? 어떤 사람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문학은 물론 정치·외교·여성운동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고 말한다. 그는 예술원 회원을 지냈으며 여류문인협회 회장, 국제 펜클럽 서울대회 준비위원장 등을 지냈다. 말년에는 그 영광스러운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한국현대시협회 회장, 통일원 고문, 펜클럽 한국본부 회장 등을 역임한 여걸이라고 자랑도 한다. 그렇지만 화려한 그의 이력 뒤에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친일행위가 숨어있다.
그의 친일행위를 한두 가지만 열거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1940년 일제의 어용화를 위하여 만들어진 조선문인협회 문예대강연회의 연단에 서는 것을 시작으로, 임전대책협력회에서「승전의 길은 여기에 있다」라는 주제로 그는 강연을 하였다. 1941년 조선교화단체연합회에서 부인궐기촉구강연과 징병징용제 취지 선전 순회강연도 하였다.
그리고 일제가 전쟁채권을 판매할 때 채권가두유격대로 참가하였으며, 부민관에서 개최된 임전보국단 결전부인대회에서는 저 무시무시한「여성도 전사다」라는 강연을 하였다. 1942년에는 최정희, 노천명 등과 함께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대원 및 간사로 참여 국민시 구극대회에서 시낭송 등 각종 여성 관련 친일단체에서 활약을 했다.
어찌 모윤숙의 친일 행위를 일일이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4389명 가운데는 분명히 소설가 김동인, 시인 서정주, 극작가 유치진과 더불어 모윤숙은 친일인사로 거명하고 있다.
일전에 서귀포시와 서귀포문인협회가 ‘서귀포 시비· 노래비 공원’을 조성하고 서귀포를 노래한 시와 노래를 새긴 비(碑)를 세웠을 때, 나는 ‘世評時評’을 통하여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다. 물론 처음 예정작품 가운데 서정주의 ‘고을나의 딸’은 배제했다. 그런데 전시된 작품을 쓴 시인가운데 김춘수와 구상과 박목월이이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구상은 5__16을 구국의 혁명이라 불렀다. 그는 박정희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진혼축(鎭魂祝)’이라는 시도 썼다. 그에게 박정희는 전쟁으로 초토화된 땅에서 만난 술친구였다. 군 시절의 박정희를 강원도로 어디로 ‘찾아가 놀았다’고도 했다. 그의 곁에는 항상 박정희가 있었다. 박정희는 민주인사들을 사법 살인한 통치자일 뿐이다. 김춘수는 역사 허무주의에 기반한 무의미 시를 쓰면서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 치하에서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이어서 방송심의위원장으로 ‘변신’한 것은 놀라움을 떠나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다. 육영수를 위한 ‘추모의 노래’를 쓴 박목월도 문제이다. 육영수에게 문학을 강의하고,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그녀의 일대기를 쓰면서 청와대를 드나들었던 인물이 아닌가?
시비논란은 또 있다. 국립4·19민주묘지의 시비(詩碑)에 4·19정신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이 빠졌다는 지적이다. 현재 4·19묘지 양쪽 측면에는 구상·정한모·조지훈·박목월·이한직·김윤식·박화목·장만영·송욱·유안진·윤후명·이성부 등 12명의 시가 새겨져 있다. 이성부의 시 <손님>을 제외한 나머지 시인과 그들의 작품이 4·19 정신에 과연 걸맞는지 의문이 든다.
소설가 김 관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