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의 합창
자연과의 합창
  • 제주타임스
  • 승인 200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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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이여, 더러는 그 열정 가지고 그대를 밝히고/더러는 그대 안에 슬픔을 베푼다./그 한 쪽더러 무덤이라 이르는 이가/다른 쪽더러는 생명의 빛이라고 말한다.”―어느 시인은 자연이 지닌 양면적 속성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참으로 자연은 말없는 스승이다. 자연은, 우리가 그것을 적대할 때에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우리의 우정어린 자세 앞에서는 물 한 방울을 통하여 우주의 섭리를 속삭여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자연을 아름다운 예술의 재료나 혹은 꿈과 그리움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자연은 우리 자신의 오만과 이기적인 탐욕 앞에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맑은 강물을 오염시키는 공장의 폐수 방류 사건이나, 산속의 은밀한 장소에 쓰레기를 파 묻었다는 등등의 보도는 신음하는 자연의 극히 작은 예에 불과하다.

 지금 사람들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물질적 풍요과 이것이 만들어낸 망상에 취해 끝간 데 없는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경쟁하듯이 허영과 낭비를 하면서, 이것이 삶의 행복이라는 오만한 자기 최면에 빠져 있다. 힘든 노동에서 해방된 향락을 좀더 누려 보겠다는 욕망으로 “몸을 망치는 향락은 있어도 몸을 보호하는 향락이라는 것은 없다.”(법구경)는 교훈을 잊은 지 오래인 것 같다. 그러는 동안에 소중한 생명 요소의 공급원인 자연은 그 기능이 마비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와 육체적 편리는 자연생태계를 오염과 파괴의 희생재물로 바친 대가인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물, 호흡하는 공기 속에 생명에 해로운 중금속류가 스며 있다는 사실을 좀더 심각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문제의 심각성을 나 자신 안에서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될 것 같다. 자연의 오염과 파괴에 대하여 행정당국이나 기업의 공장을 탓할 줄은 알면서도, 내가 그 공범자이거나 가해자임을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 매일의 생활에서 무한정으로 사용하고 있는 일회용 기구들을 비롯하여 우리 집안의 곳곳에서 환경 오염의 주범들은 버젓이 도사리고 있다. 또 함부로 내버린 쓰레기들이 양심을 마비시키고 오만의 악취가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오지만, 우리는 벌써 거기에 무감각해 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이성을 가졌고, 위기를 극복할 줄 아는 지혜도 갖고 있다. 우선 필요한 것은 내가 섬처럼 홀로 떨어져 사는 것이 아니라, 남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남’이라는 개념을 좀더 확대 해석할 필요가 있다.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떨어지 남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과 무생물까지도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인 것이다. 우리가 자연 환경과 목소리를 합쳐 삶의 즐거움을 우렁차게 합창할 수 있을 때, 환경과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길은 거기에서 열릴 것이다.

 우리 저지르는 허물을 고발할 사람이 없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아파해야 한다. 자연은 우리의 적대적인 행위를 언제까지고 묵인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연은 우리의 호의와 정성어린 노력에 대하여 풍성한 생명과 사랑의 보답을 베풀어 줄 것이다.
                       
   김 영 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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